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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픈’ 전직 대통령의 출석 거부 [서아람의 변호사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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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04 22:40:34 수정 : 2025-08-04 22: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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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피고인에게 재판 출석은
구치소 벗어나는 절호의 기회
거부 사례 별로 없어 대응 난감
다양한 판례 확보 계기 될 수도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한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은 법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습니다. 홀 중앙에 판사가 앉는 법대가 있고, 형사 법정의 경우 법대를 기준으로 좌측에 검사석이, 우측에 피고인석과 변호인석이 있으며, 그 사이에 증인석이 있고, 뒤쪽으로는 방청석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사실 검사석 뒤쪽이나 피고인석 뒤쪽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밀의 문(?) 하나가 달려 있습니다. 그 문을 열면 뒤쪽에 의자가 줄줄이 설치된 작은 방 하나가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구속 피고인 대기실입니다.

 

매일 오전이나 오후 재판을 시작할 때마다 구속 사건을 우선으로 심리하는데, 비밀의 문이 열리고 수의를 입은 피고인들이 차례대로 들어와서 재판을 받습니다. 재판에 빠지는 사람도, 법정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도 없습니다. 애초에 구속이라는 제도 자체가 도주 우려나 불출석 우려가 있는 피의자의 신병을 미리 확보하여 조사와 공판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대기실에 얌전히 앉아 자기 순서를 기다리다가 이름이 불리면 나가서 재판을 받고 끝나면 들어와 다시 앉습니다. 몸이 아파서, 회사에 연차를 못 내서, 날짜를 헷갈려서, 심지어 비가 많이 와서 등등의 핑계로 걸핏하면 재판에 늦고 빠지는 불구속 피고인들에 비하면 구속 피고인들은 그야말로 ‘개근상’을 받고도 남을 정도의 출석률을 보입니다.

서아람 변호사

구속 피고인들은 기소된 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수사 중인 별건이나 추가 건으로 경찰,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있고,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매우 우수한 출석률을 보이는데, 답답하고 열악한 구치소를 벗어나 비로소 숨 쉴 만한 환경에 머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검사로 일하면서 마약 사건 재판 전담을 맡았을 때는 걸핏하면 ‘유통책, 공급책에 대해 제보하겠다’는 수용자들의 서신에 시달리곤 했는데, 진심으로 수사에 협조하려는 사람보다는 검사실에 온종일 있을 기회를 노리는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겨울에는 온풍기가 쌩쌩 나오고, 운 좋으면 시원한 음료수나 달달한 믹스커피도 얻어 마실 수 있는 곳. 거기서 운이 좋으면 그리운 가족에게 전화도 한 통 걸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니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렇다 보니 구속 피고인이 출정이나 출석을 거부하는 경우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으로서는 당혹스럽습니다. 사례가 별로 없어 이에 대한 상세한 대응 매뉴얼이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현재 구속상태로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 중인데, 첫 기일부터 세 번 연속으로 건강 이상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건희 전 영부인 관련 의혹을 조사하는 특검팀의 조사 소환에도 응하지 않아 결국 특검팀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려고 하였으나 수용자 본인의 강경한 거부로 실패했습니다.

 

형사소송법에서 피고인이 출석해야 공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정해둔 것은 피고인 본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피고인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재판을 무기한 지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제277조의 2에서는 구속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사소송규칙 제126조의 5에서는 ‘법원은 피고인의 출석 없이 공판절차를 진행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미리 그 사유가 존재하는가의 여부를 조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의 재판부가 사유 조사를 명한 것도 위 규칙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위 조항이 적용되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국정농단 1심 과정에서 구속영장이 추가로 발부되자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며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서울구치소는 ‘전직 대통령 신분 때문에 강제 인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2021년 대법원 판결로 확정될 때까지 궐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와는 조금 다른데, 박 전 대통령은 명시적으로 재판을 거부했던 반면 윤 전 대통령은 ‘당뇨 악화, 기력 저하, 실명 위험 상승, 간 수치 악화’ 등을 불출석 이유로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재판에 나올 수 있는 건강 상태임이 확인되면 형사소송법 제277조의 2에 따라 궐석 재판을 진행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렇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명시적으로 재판을 거부한 것이 아니어서 계속 출석을 요구하며 공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체포영장 집행에 있어서는 그 곤란함이 배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체포영장’의 효력에는 영장 발부 대상자가 거부하더라도 물리력으로 제압하고 신병을 억압할 수 있는 권한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구속 피고인의 경우 그 신병에 관한 일차적 권한이 교정당국 즉 구치소에 있는데, 서울구치소에서는 안전사고의 위험이라든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언급하면서 물리력 행사에 주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치소에 있는 피의자를 교도관 아닌 수사관이 직접 수용실 안으로 들어가 물리력을 행사해 체포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합니다. 일각에서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피의자와 다르게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의 위반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제가 법대에 다니던 시절 ‘형법각론’을 가르치던 교수님은 각칙 제1장 ‘내란의 죄’를 건너뛰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차피 너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실제로 볼 일이 없을 테니 알아서 교과서 읽어봐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내란죄로 재판이 열렸습니다. 게다가 구속 피고인의 체포영장 집행 거부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연일 더 세게 불붙는 논란과 뉴스에 국민의 마음도 시끌시끌합니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덕분에 다양한 판례가 확보되어 대한민국 법학이 발전할 거라는 웃픈 희망 정도일까요.

 

서아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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