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관료·정치인 거치는 동안 평생 ‘그림자 내조’
“남편이 이론 경제학 박사라면 저는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개를 절약하는 ‘실천 경제학’ 박사지요.”
1995년 6월 지방선거에서 첫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조순(2022년 별세)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부인 김남희씨가 선거 직후 언론에 밝힌 소회다. 조 전 부총리가 1960∼2000년대에 촉망받는 경제학자이자 관료, 또 정치인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씨의 조용한 내조가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 김씨가 남편의 사망 후 3년여 만인 31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4세.

1931년 강원도 강릉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남편보다 세 살 어리다. 1948년 역시 강릉 출신으로 서울대 상대에 재학 중이던 조 전 부총리와 결혼했다. 집안 어른들의 중매로 서로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상태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고 한다. 당시 고인의 나이 고작 17세에 불과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남편이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돼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성장하는 동안 고인은 묵묵히 내조에 전념하며 네 아들의 육아에만 전념했다. 남편이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10년 가까이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로 아이들을 키운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조 전 부총리가 육군사관학교 교관이던 시절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은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 발탁돼 경제부총리(1988∼1990), 한국은행 총재(1992∼1993) 등으로 출세가도를 달릴 때에도 고인은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른바 ‘조순학파’를 이끄는 석학으로 통하는 남편과 달리 정작 본인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라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5년 조 전 부총리가 야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며 비로소 고인도 남편의 선거운동을 돕는 차원에서 언론과의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고인은 “완고하신 부모님들이 ‘여자는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없고 여자 할 도리만 잘하면 된다’고 하셔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라며 수줍어했다. 이어 “나는 학교 공부는 많이 안했지만 박사인 조 후보와 평생을 살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남편이 집안 살림에 관한 결정 때 내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주고 네 아들도 모두 공부를 잘해 속을 썩인 일이 없었다”고도 했다.

조 전 부총리가 서울시장에 당선된 직후 고인은 “좋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 최대 도시 시장의 부인으로서 “일이 주어지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할 것”이라며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조 전 부총리가 대통령 후보 출마를 위해 서울시장을 그만둘 때까지 그림자 같은 내조로 남편을 도왔다.
유족으로 자녀 조기송(전 강원랜드 대표이사)·조준(강릉 조소아과의원 원장)·조건(대연금속 대표)·조승주씨(조선대 의대 교수), 며느리 허태경·현용숙·양연향·윤호정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8월2일 오전 7시, 장지는 강릉시 구정면 선영이다. (02)30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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