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관련 의혹 등을 수사하는 채해병 특별검사팀(특검 이명현)에 압수된 아이폰 기종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전 비서관의 협조가 특검팀 수사의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를 낳았던 ‘아이폰 비밀번호’ 문제를 해결할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해병대 수사단(수사단)의 조사결과를 경찰에서 돌려받는 과정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이 전 비서관은 31일 오전 특검팀 사무실에 출석했다. 그는 ‘이첩 사실을 듣고 윤 전 대통령이 또 격노한 사실이 있냐’, ‘기록 회수 자체가 위법하다는 생각은 안 했냐’, ‘경북청에도 전화해 사건 접수를 미루라고 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성실히 진술 잘하겠다”고 짧게 답했다.

이 전 비서관은 수사단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특정해 최초 조사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긴 2023년 8월2일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과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과 연락하며 기록 회수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대통령비서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기록을 가져오는 과정에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와 국방부, 경북경찰청을 연결했다는 정황을 파악해 조사 중이다. 이 전 비서관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했던 박모 총경에게 지시를 내려 이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에게 전화해 유 전 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유 전 관리관은 경북청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수사 기록 회수를 상의했다고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채해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이 전 비서관은 휴대전화 잠금을 푸는 데도 협조할 예정이다. 정민영 채해병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특검은 기존에 이 전 비서관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해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압수한 바 있다”며 “이 전 비서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 제공과 잠금해제를 위한 얼굴 인식에도 협조하기로 해서 오늘 포렌식 참관절차 일부도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이 전 비서관이 협조 의사를 밝히면서 추후 다른 조사 대상자들의 협조를 끌어내는데 시작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채해병 특검팀은 10일 이 전 비서관 자택 등을 압수수색 해 휴대전화를 압수했지만 이 전 비서관이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특검팀에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서 포렌식 과정에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들이 사용하는 아이폰은 보안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종으로 알려져 있다.
채해병 특검팀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휴대전화 외에도 윤 전 대통령 부부 등이 사용하던 비화폰의 통신기록을 국군지휘통신사령부와 대통령 경호처로부터 차례대로 제출받고 있다. 통신기록뿐만 아니라 조사 과정에서 비화폰 사용 여부를 확인하면서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도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 사무실에 출석해 조사받는 중이다. 16일에 이어 두번째 조사다. 특검팀은 박 대령에게 군 관계자 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진술에 대한 입장을 추가로 물을 예정이다.
박 대령의 법률대리인인 변경식 변호사는 “박 대령 항명 사건에서 자신의 기억에 반해서 허위 진술을 한 증인들이 일부 포착됐다”며 “박 대령을 모해(타인을 해치다)할 목적으로 위증을 했다는 측면에서 수사를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채해병 순직 사건을 경찰에 넘기는 것을 보류하라고 지시했을 때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이 자신에게 ‘VIP(윤석열 전 대통령)가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한편 채해병 특검팀은 2023년 7월31일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국가안보실 소속 관계자에게서 ‘격노를 목격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이충면 전 외교비서관,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등 5명이다.
특검팀은 앞으로 임 전 사단장을 채해병 순직사건의 주요 혐의자에서 빠지도록 한 이른바 ‘구명 로비’ 의혹과 수사단의 조사 결과가 달라지게 한 의혹 등에 대해 조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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