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출범 이후 첫 세제개편안을 통해 세수 확충에 시동을 걸었다. 이전 정부 3년간 시행된 세법개정안만으로 80조원(누적법 기준)이 넘는 세수 감소가 예상됐는데 이런 감세 기조를 전면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법인세율 1%포인트 인상 등이 포함된 이번 세제개편안을 통해 향후 5년간 약 35조원6000억원 세수가 늘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는 이렇게 확보한 재원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등 초혁신 기술분야 투자를 늘려 ‘경제성장→세입증대→재정 지속가능성 확보’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올해 0%대 저성장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법인세율을 올리는 것은 대내외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저해할 수 있어 ‘증세 타이밍’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가 31일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확정·발표한 ‘2025년 세제개편안’을 보면 세수 확충 방안이 다수 반영됐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법인세율을 과세표준 전 구간에서 종전보다 1%포인트씩 올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9~24% 수준이었던 법인세율은 10~25%로 상향돼 2022년 수준으로 환원된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세율 인상에 따라) 확보된 재원으로 기업의 초혁신 제품개발 지원 등을 통해 다시 기업에게 되돌려 주겠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2023년부터 매년 인하됐던 증권거래세율도 현재 수준보다 0.05%포인트 인상된다. 금투세가 폐지된 만큼 2023년 수준으로 세율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정부안이 통과되면 코스피는 현재 0%에서 0.05%(농어촌특별세 0.15% 유지)로, 코스닥의 경우 0.15%에서 0.20%로 증권거래세율이 각각 인상된다.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도 ‘종목당 50억원 이상’에서 ‘종목당 10억원 이상’으로 강화된다.
◆고배당기업의 배당소득엔 분리과세
정부는 이와 함께 국내 자본시장의 투자 매력을 높이기 위해 고배당기업의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도 도입키로 했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금융소득(배당·이자)에 대해 2000만원까지는 14%를 원천징수하지만, 2000만원이 넘으면 종합소득과세 대상에 포함돼 14~45%의 세율이 부과된다.
정부는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외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가 낮은 배당성향에 있다면서 세제상 인센티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고배당기업으로부터 받은 배당소득에 대해 과세표준 2000만원 이하는 14%, 3억원 이하는 20%, 3억원 초과는 35%의 누진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3억원 초과 배당소득에 대한 최고세율이 종전보다 10%포인트(지방소득세 제외) 낮아지는 셈이다.
정부는 ‘전년 대비 현금배당이 감소하지 않은 상장법인’으로서 ‘배당성향이 40% 이상’ 또는 ‘배당성향 25% 이상 및 직전 3년 대비 5% 이상 배당이 증가한 상장법인’ 중 한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고배당기업으로 인정해주기로 했다. 적용기간은 2026~2028년 사업연도에 귀속되는 배당분으로 공모·사모펀드, 리츠, 특수목적법인(SPC) 등은 제외된다.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시행되면 ‘초부자’들이 주로 혜택을 받는다는 지적과 관련해 정부는 그런 부분을 감안, 최고세율을 적절하게 설정했다고 밝혔다. 이형일 기재부 1차관은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배당을 하고 있는 기업과 그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최근에 좀 더 배당을 늘릴 수 있는 기업들도 배당에서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두 가지 그룹으로 만들었다”면서 “분리과세할 때는 종합과세 같으면 45%의 과세가 되기 때문에 그 부분과의 관계를 감안해서 35% 정도로 정했다”고 말했다.
배당 확대를 위해 투자·상생협력 촉진세제도 개편된다. 이 제도는 투자·임금증가·상생협력 지출액으로 환류한 금액이 당기 소득의 일정 비율에 미달하면 20% 추가 과세하는 것이다. 정부는 환류 대상에 배당을 추가하고 기업이 환류해야 하는 기업소득 비율도 최대 85%(투자포함형)까지 상향키로 했다.
올해 3월부터 국가전략기술에 포함된 인공지능(AI) 분야의 세부기술도 △생성형 AI 기술 △에이전트 AI 기술 △학습 및 추론 고도화 기술 △ 저전력 고효율 AI 컴퓨팅 기술 △인간 중심 AI 기술 등 총 5가지로 구체화했다. 해당 기술과 관련해 연구개발에 나서거나 투자할 경우 각각 30~50%, 15~30%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또 웹툰콘텐츠 제작비용에 대한 소득·법인세 세액공제가 신설된다. 인건비, 저작권료 등 웹툰·디지털만화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이 공제되는데 대·중견기업은 10%, 중소기업은 15%의 공제율이 적용된다. 국내 영상제작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영상콘텐츠 소득·법인세 세액공제 적용기한을 2028년 말까지 연장하고, 대기업에 대한 기본공제율을 종전 5%에서 10%로 상향한다.

◆다자녀 가구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혜택↑
서민·중산층, 소상공인의 생활 안정을 위한 세제지원 방안도 마련됐다. 우선 다자녀가구 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신용카드 등 소득공제 기본한도를 자녀당 50만원(최대 100만원) 상향한다. 현재는 자녀수와 상관없이 총급여 7000만원 이하에서 기본공제는 300만원에 그쳤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자녀 1명은 350만원, 자녀 2명 이상은 400만원의 기본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 총급여 7000만원 초과자의 기본공제 기본한도는 자녀당 25만원(최대 50만원) 상향된다.
아울러 월 20만원인 보육수당 비과세 한도를 자녀 1인당 월 20만원으로 확대한다. 자녀의 교육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초등학교 2학년(만 9세 미만)까지 예체능 학원비를 교육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대학생 자녀의 아르바이트 소득으로 연말정산 때 교육비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자녀의 소득요건도 폐지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자녀의 소득금액 합계액이 100만원(총급여 500만원)을 초과하면 교육비 공제를 받을 수 없었다.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직장을 이유로 멀리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가 각각 월세 세액공제(부부합산 한도 연 1000만원)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자녀가 3명 이상인 경우 월세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택 규모를 현행 85㎡ 이하에서 지역 구분 없이 100㎡ 이하로 상향한다.
소상공인의 세 부담 완화를 위해 노란우산공제 해지 요건도 완화한다. 현재 경영악화 등을 이유로 공제금을 수령하는 경우 퇴직소득으로 저율과세하고, 그 외 사유는 종합과세한다. 정부는 경영악화에 해당하는 요건을 ‘수입금액이 직전 3년 평균 대비 50% 이상 감소’에서 ‘20% 이상 감소’로 완화해 저율과세 수혜 대상을 넓히기로 했다.
지역 골목 상권 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지역사랑상품권 지출금액을 전통시장 기업업무추진비 추가 한도 대상에 포함하고, 추가한도도 2배(10→20%) 상향된다. 기부 활성화를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10만원 초과 20만원 이하 고향사랑기부금에 대한 세액공제율도 15→40%로 상향된다. 20만원을 기부할 경우 14만4000원(10만원 전액+10만원 초과분의 44%)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답례품 한도(6만원)를 감안하면 총 20만4000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아울러 생계형 창업중소기업의 세액감면 적용대상 수입금액 기준을 연간 8000만원에서 1억400만원 이하로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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