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최초 에베레스트 겨울 등정 등
기록 세우며 전설적 등반가 명성
경비행기로 세계일주 탐험 꿈꿔
8개월간 담도암 투병 끝 하늘로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하고 북극과 남극, 에베레스트까지 지구상 3극점에 도달했던 산악인 허영호 대장이 영면했다. 향년 71세.
허영호 대장 유족 측은 30일 “지난해 12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8개월가량 투병하다 29일 오후 8시9분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말했다.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허 대장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고인은 학창 시절 가느다란 로프를 타고 차가운 바위를 오르는 게 즐거워 산악인이 됐다. 고인은 8000m가 넘는 고산을 오르려면 폐활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틈만 나면 달렸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앨범 메모장에는 ‘산이 좋아서 산에서’라는 글을 남겼을 정도로 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허 대장은 1980년 한국산악회에서 마칼루(8481m) 원정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고, 2년간 혹독한 훈련 끝에 1982년 5월 성공적으로 등반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듬해 10월에는 히말라야 마나슬루(8156m)를 무산소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고인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87년 겨울철에 에베레스트(8848m) 정상을 정복했다. 또 1994년 남극점, 1995년 북극점에 도달하면서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과 3극점에 모두 올라선 산악인이 됐다. 7대륙 최고봉은 △아시아 에베레스트 △남미 아콩카과(6959m) △북미 매킨리(6194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오세아니아 칼스텐츠(4884m) △유럽 엘부르즈(5642m) △남극 빈슨 매시프(5140m)다.
허 대장이 각 대륙 정상에 오르는 동안 수많은 위기도 있었다. 1982년 마칼루를 오른 후 하산하는 길에 눈사태를 만나 200m 아래로 추락했다. 1983년 마나슬루 등반 당시에는 깊이 40m 크레바스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를 헤쳐나왔으며 전설적인 산악인으로 우뚝 섰다.
허 대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을 받았다.
고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어린 시절 꿈인 파일럿이 되기 위해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면허증을 땄다. 경비행기로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꿈을 꿨던 고인은 2007년 1월 1일 오전 무게 225㎏, 날개 길이 9m의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여주∼제주 첫 비행에 나섰다. 허 대장이 탄 비행기는 전북 전주를 거쳐 전남 완도군 청산도 남쪽 4.3마일(제주 북동쪽 38마일) 상공을 지나던 중 엔진이 꺼지면서 해상에 불시착했다. 다행히 사고 직후 가스 운반 선박에 의해 구조된 허 대장은 2008년 4월 여주∼제주 1000㎞ 단독 비행에 재도전해 성공했다. 2011년에는 초경량 비행기로 국토의 동·남·서쪽 끝인 독도, 마라도, 가거도를 거쳐 다시 충북 제천비행장으로 돌아오는 1800㎞의 단독 비행을 완수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고인은 산과 인연을 이어갔다. 2016년 개인 통산 다섯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당시에는 가상현실(VR) 영상을 촬영했다. 당시 허 대장은 “많은 사람이 에베레스트에 가 보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실감 나는 VR 영상을 찍어 그 아쉬움을 달래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7년 5월에도 허 대장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며 국내 최고령(63세), 또 국내 최다 등정(6회)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허 대장은 강단에서 수많은 젊은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파했다. 고인은 “꿈꾸는 것은 도전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며 “목표를 세웠으면 꾸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허 대장은 2020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3가지 꿈으로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현재 기록 80세) △허영호 산악 박물관 설립 △경비행기 타고 7대륙 3극점 도달을 말한 바 있다.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길이 기억될 도전 정신을 남긴 채 영면에 들었다.
슬하에 1남1녀(허재석·허정윤)를 둔 고인의 빈소는 서울 한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10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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