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 더해 어려움 자체를 즐기는 건 어떨까
“시원한 게 땡길 땐 평양냉면 육수. 누구나 냉면육수 하나쯤은 들고 다니잖아요.”
편의점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보려고 들어갔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엉뚱하게도 커피 옆 평양냉면 음료의 이 광고 문구였다. 냉면 육수를 굳이 ‘음료’라고 부른 건 이 상품이 230㎜ 분량의 음료수로 팔리기 때문이다. 편의점 커피나 주스처럼 파우치에 담아서 팔고, 크기에 맞는 얼음컵에 부으면 넘치지 않게 찰랑이며 꽉 차는 당당한 얼음컵용 음료수. 이렇게 평양냉면 육수가 음료로 팔리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일회성 이벤트 상품이라 생각했는데 유난히 더운 올여름도 어김없이 판매 중이다. 아니, 올해는 평양냉면 인기가 더 늘었다.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컵밥 대신 컵냉면을 팔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한 대형 극장체인도 콜라, 팝콘과 함께 컵냉면을 판매한다.

한국인의 냉면 사랑이 유난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유달리 더운 올해 여름, 냉면음료 못잖은 독특한 음료가 나라 구분 없이 유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미국에서 인기 있는 여름음료는 피클 주스다. 그렇다. 절인 오이를 담은 그 국물 얘기다. 처음 유행을 퍼뜨린 건 운동선수들. 급격한 근육 경련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피클 국물’을 마시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 유행은 곧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젊은 층에 퍼져 나갔고 피클주스를 작은 병에 담아 음료수처럼 판매하는 전문 회사가 인기를 끄는 한편, 전통적인 피클 회사들도 앞다퉈 피클주스 음료수를 선보였다. 심지어 햄버거 체인점 파파이스는 피클 레모네이드를 따로 만들어 인기를 끌었을 정도다.
한때 나이 든 실향민이나 즐기던 한국의 평양냉면이 젊은 사람들의 솔 드링크가 된 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덕분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피클주스 열풍의 배경은 어김없이 틱톡이었다. 이런 식으로 세계 각국의 독특한 여름나기 음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재발견되고 해외로 퍼져 나간다. 예를 들어 인도에선 ‘님부파니’라는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마시는데, 일반적인 레모네이드와 달리 설탕만 넣는 게 아니라 소금을 함께 넣는 게 특징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끄는 인도인들의 레시피는 후추나 큐민, 마살라 같은 향신료를 추가한 특별한 버전들. 매콤 짭조름한 커리향이 그만이라고 한다.
베트남의 ‘쩐무이’라는 라임에이드도 베트남을 넘어 세계에서 조금씩 유명해져 가는 음료다. 라임을 짜 넣어 라임에이드를 만드는 대신, 우리가 매실청을 설탕으로 만드는 것처럼 라임을 커다란 유리병에 가득 넣고 굵은소금에 절여 수개월씩 발효시킨다. 나중에 이렇게 잘 절여진 라임을 하나씩 꺼내어 으깬 뒤 물이나 탄산수에 타 먹는 음료다. 집집마다 직접 담그기도 하지만 병입해 판매하는 ‘짭짤한 음료수’는 최근 수출도 인기라고 한다.
영어 격언에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건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이 있다. 영미권에서 레몬은 좋지 않은 일을 뜻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한탄만 하지 말고 좋은 일로 바꿔보라는 얘기다. 이상 기후로 세계가 절절 끓는다. 과연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 지속가능한 것인지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그래도 인생이 우리에게 신맛을 건넬 때, 달달한 설탕으로 눈가림하기보다는 소금을 조금 뿌려서 신맛을 즐겨보자. 고난에 설탕을 씌워 단맛으로 속이는 대신, 짠맛을 더해 어려움 자체를 즐기게 된다면 더위도 어느새 물러가지 않을까.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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