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청년 실업률 높고 내수시장은 위축
단순한 외자 유치 넘어 ‘기술력’ 원해
글로벌시장 진출 전 역량검증 최적무대
中제품 유일한 단점은 ‘메이드 인 차이나’
기획력·협업·브랜딩 등 전략 무기로
中 제조업과 손잡아야 성공 가능성 커
알루미늄 등 원자재 시장은 아직 기회
코트라, 수출 다변화·판로 확보부터
中 강소기업 연결… 생태계 안착 지원
황재원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은 “중국은 제조 공정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제품도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한국 기업이 중국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해보며 제품을 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럴 때 “중국은 더 큰 해외시장 진출 이전 단계에서 사업 역량을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을 시험 무대로 활용해 기술을 고도화하거나 브랜드를 점검할 수 있고, 이것이 중국 외의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거란 의미다.

칭다오, 샤먼, 시안, 광저우, 홍콩 등지에서 무역관장을 지내며 18년 동안 중국 각지를 누빈 황 본부장은 코트라의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지난 28일 베이징 코트라 사무실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황 본부장은 중국 내 소비 위축과 외자 유치 정책 변화, 한국 기업의 생존 전략 등을 진단하며 “중국을 포기할 이유도 없지만 이전 방식대로 접근할 수도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 내 소비심리에 대한 평가는.
“현장에서 느끼는 소비 위축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청년 실업률이 높고, 중산층은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라 소비 여력이 크게 줄었다. 여기에 공무원 접대 문화를 사실상 없앤 금주령도 소비 위축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민간 소비는 공공 지출이 뒷받침해주는 측면이 있었는데, 공무원조차 접대를 꺼리고 소비를 자제하면서 민간·공공 소비 모두가 얼어붙었다. 겉보기에 중국 내 관광지에는 인파가 몰려 있지만, 이전에는 해외여행을 갈 수 있던 계층이 국내여행으로 몰린 결과일 뿐이고 주로 국내여행을 다니던 소비층은 여행을 자제하는 등 확실히 위축된 상태다.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워 보인다.”
―계속되는 지방정부의 외자 유치 노력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까.
“기회는 분명히 있다. 다만 과거처럼 ‘들어오면 다 해준다’는 시대는 끝났다. 지방정부 공무원들의 외자 유치 열의는 높다. 외자 유치가 핵심성과지표(KPI) 기준으로 부여된 상황이라 설명회도 적극 열고 기업 접촉도 많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의 시선은 다르다. 중국 시장 자체에 대한 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들어가서 성장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가능하겠냐는 의문이 큰 상황이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네거티브 리스트 완화다. 과거에는 JV(합자) 형태로만 진출할 수 있었던 업종에 대해서도 단독 진출이 가능해졌다. 기술을 가진 기업이라면 과거보다 나은 조건에서 기회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이제 자본 유치를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자본은 내부에서도 넘치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술을 원한다. 지방정부 기금이 먼저 나서고, 기술만 들어오라는 제안이 많다. 기술을 가진 기업 입장에서 자본 리스크 없이 진출할 수 있는 구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기술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대비는 필요하다.”
―중국 측 외자 유치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과거에는 지방정부가 주로 대기업만 상대하고, 외자 유치도 큰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지방정부들도 위기의식이 커졌고, 이제는 규모에 관계없이 외자를 끌어오려는 움직임이 분명하다.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기술이나 제품이 있으면 지방정부가 먼저 다가와 입주 조건을 제시하거나 초기 정착 지원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 코트라 무역관들도 이를 활용해 현지 정부와 기업 간 연결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산둥성이나 장쑤성처럼 산업기반이 튼튼한 지역은 외국기업의 품목 구조까지 분석해 맞춤형으로 유치 전략을 짜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활용 전략 변화는.
“크게 보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중국을 단순한 생산기지로 보던 시기다. 싸고 손쉬운 생산, 낮은 인건비, 유연한 노무 환경이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는 중국을 내수 시장으로 본 시기다. 중국의 구매력이 크게 올라가면서 우리 제품을 중국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화장품·식품·자동차 부품 등을 중심으로 성과가 있었다. 이제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생산도, 시장도, 기술 경쟁도 쉽지 않다. 그만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 기업은 10여년 전부터 제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고, 기술 수준도 빠르게 올라왔다. 이제는 단순 경쟁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그렇다고 완전히 빠질 수는 없다. 오히려 중국의 강한 제조 역량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ODM(제조업자개발생산·원청이 하청업체에 제품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맡기는 것) 방식의 협력 또는 한국이 가진 기획력과 소비자 감각을 더해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방식 등이 있겠다. 가령 다이소에 가면 대부분의 제품이 중국산이지만 제품 기획은 한국에서 한다. 그런 방식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한한령 해제가 언급되며 콘텐츠 산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중국은 한한령 자체를 부정하지만, 실제로는 단계적 개방을 하고 있다. 게임 판호(중국 내 게임 서비스를 위한 허가권) 발급이 재개된 지는 꽤 되어서 이제 판호 발급은 뉴스거리도 안 된다. 그만큼 일부 영역에서는 제약이 줄고 있다. 다만 이는 정치·외교적 판단이 아니라 산업 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영역부터 열어주는 식이다. 예컨대 드라마는 중국이 쇼트폼 콘텐츠 등을 앞세워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방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음악은 K팝에 비해 약한 분야라 개방이 늦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 방식이 중요하다. 중국 현지 인재를 K팝 방식으로 육성해 시장에 내놓는다든지, 방송 포맷 수출을 통해 간접 진출하는 방식도 있다. 저작권 문제 역시 개별 대응보다는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의 규범과 영향력을 활용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중국 시장이 열릴 때를 기약 없이 기다리기보다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이익을 찾는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코트라의 중국 진출 지원 방식은.
“크게 B2C와 B2B로 나눈다. B2C는 소비재 수출 다변화와 유통 채널 확보가 핵심이다. 소비재는 기존의 화장품과 식품에서 더 나아가 패션, 생활용품, 반려동물 제품, 고령 친화 상품 등으로 확대를 모색 중이다. 패션 영역에서는 경쟁력 있는 한국 업체와 협업해 브랜드를 중국에 소개하거나, 1인 가구·노인 인구 증가 같은 트렌드에 맞춰 상품군을 제안하기도 한다. 지역별로 유통 채널도 다르게 접근한다. 칭다오에서는 신선식품을 프리미엄 슈퍼에 연결하고, 창사에서는 세븐일레븐, 선전에선 샘스클럽, 베이징에서는 징둥 등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는 유통망과 연계를 진행 중이다. B2B에서는 ‘전정특신’(전문화·정밀화·특색화·참신화를 갖춘 중국의 강소기업)으로 불리는 중국형 히든챔피언 기업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각 지역별 산업 클러스터에 맞춰 한국 기업의 기술·부품·장비를 공급하는 구조다. 이는 단순 거래가 아니라 그 기업들의 생태계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발 한국 투자 유치 방향은.
“상반기 통계만 보면 줄어들었지만 불확실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 민감한 분야는 미·중 갈등으로 인해 유치가 쉽지 않다. 그러나 지역 단위로 보면 여전히 기회는 많다. 정저우의 알루미늄, 샤먼의 텅스텐 등 특정 분야에선 실제 한국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자율주행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트라는 몇몇 대도시 중심으로 투자를 유치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전체 무역관이 각 관할 지역에서 수요를 발굴하고 있다. 기존 무역관의 인프라를 활용해 협업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고, 실무적인 조율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 진출을 바라는 한국 기업의 장기적 전략에 대해 조언해달라.
“중국은 여전히 ‘훈련장’이다. 기술, 가격, 마케팅, 유통 모든 면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살아남는다. 중국에서 살아남은 기업만이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등의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과 맞설 수 있다. 과거엔 ‘메이드 인 코리아’가 보호막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국 기업들이 품질·디자인·가격에서 모두 강점을 갖고 있다. 중국 제품의 유일한 단점은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력은 기본이고, 협업·소싱·브랜딩 모든 부분에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을 견제만 할 것이 아니라 잘 활용해야 한다. 훈련장이자 파트너라는 이중적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황재원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은…
●1968년 서울 출생 ●관악고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학사(무역학 부전공) ●핀란드 헬싱키경제대학 MBA ●중국 길림대학교 경제학 박사 ●서울대학교 중국최고위과정(AMP) 수료 ●코트라 칭다오·샤먼·시안·광저우·홍콩 무역관장 ●제22대 코트라 중국지역본부장(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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