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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시대정신] ‘팔란티어’의 질주가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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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28 22:50:52 수정 : 2025-07-28 22: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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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軍 등에 전략적 통찰 제공
국제적 분쟁과 맞물려 급성장
힘의 논리가 글로벌 정세 지배
각자도생 시대에 韓 대응 절실

한때 ‘빨랑튀어’란 조롱이 따라붙던 기업이 있다. 뉴욕증시의 주도주로 급부상한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다. 지지부진하던 주가는 지난해 340% 폭등한 데 이어 올해도 100%가 넘는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테슬라, 엔비디아와 함께 서학개미들의 ‘3대장’으로 꼽힌다.

팔란티어는 2003년 설립된 미국의 빅데이터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미국 국방부를 비롯해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영국 비밀정보국(SIS) 등을 주 고객으로 두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회사’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팔란티어’라는 이름은 존 로널드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가져왔다. 마법사 사루만과 반지원정대가 세계의 비밀을 엿보던 그 마법의 구슬이다. 기업 팔란티어는 그 상징을 현실로 옮겼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정부, 군, 기업에 전략적 통찰을 제공한다. 창업자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와 함께 페이팔을 만든 실리콘밸리의 거물이자, 열렬한 톨키니스트(톨킨 세계관 광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소설 속 어둠의 시대에 팔란티어가 빛을 냈듯, 기업 팔란티어의 부상 역시 세계의 혼돈과 맞물려 있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다. AI와 드론이 본격 투입된 첫 전장에서 우크라이나는 팔란티어의 기술을 무기 삼아 ‘골리앗’ 러시아에 맞섰다. 최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작전의 배후에도 팔란티어가 있다.

팔란티어의 약진은 첨단 기술과 군사적 긴장이 교차하는 시대의 징후다. 팔란티어뿐 아니라 전 세계 방위산업 전반이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국방비 목표를 대폭 상향 조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세계 주요 방산업체들은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며 공장 증설과 인력 확충에 나섰다. 한국도 폴란드, 호주, 이집트, 노르웨이 등으로 무기 수출을 확대하며 ‘K방산’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방위산업은 현재 글로벌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섹터다. 21세기의 세계가 다시 군비 경쟁이라는 낡은 궤도 위에 올라설 줄 누가 예측했을까.

인류의 역사는 줄곧 전쟁으로 쓰였다. 최근 30년(1990~2021년)은 오히려 예외적인 평화의 시대였다. 국지적 충돌은 있었지만, 냉전 종식 후 세계는 자유주의 국제질서 아래 안정을 유지해 왔다. 과거 제국들이 총칼로 팽창했다면, 20세기 말 소련에 대한 미국의 승리, 21세기 초 중국의 주요 2개국(G2) 도약은 총성 없이 얻은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세계화, 지구촌이라는 낙관적인 수사 아래 전쟁은 먼 과거의 유물이 된 듯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낙관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우리는 피가 튀는 전면전이 여전히 현실적인 위협임을 생생히 목격했다. 2023년 10월에는 하마스 무장대원의 기습과 이스라엘의 피의 보복으로 또 다른 전면전이 시작됐다. 세계를 짓누른 두 개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올해 들어 갈등의 불길은 계속 번지고 있다. 지난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국경에서 충돌했다. 자폭 드론 등 신무기까지 동원해 파괴력을 드러냈다. 6월에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고, 대외 군사개입에 신중하던 미국마저 이란 핵시설 정밀 타격에 나섰다. 7월 24일 시작된 태국과 캄보디아의 교전은 여덟 살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의 참혹한 희생으로 이어졌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갖던 예리한 공포는 무뎌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린란드 병합과 파나마운하 환수를 거론하며 무력을 언급하고,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꾸고 싶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또한 “현실적이고 임박한 위협”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8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17년, 미국 국방부가 전장에 투입할 AI 알고리즘 개발을 추진하며 구글에 협력을 요청했을 때, 구글 직원들은 “악마는 되지 말자(Don’t be evil)”며 맞섰다.

그러나 그 선은 오래가지 않았다. 팔란티어를 시작으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빅테크들이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속속 뛰어들었고 구글 또한 결국 그 대열에 섰다. 한때 평화와 협력을 약속하던 세계가 이제 각자도생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주는 시대의 단면이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est.) 토머스 홉스가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인용한 라틴어 경구다. 플라우투스의 희극에서 비롯된 이 문장은 홉스에 이르러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뜻하는 철학적 은유가 되었다. 힘의 논리가 국제 정치를 잠식하고 있다. 늑대들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대한민국도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할 때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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