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통업계가 전반적인 내수 부진과 유동성 위기로 구조조정에 돌입한 가운데, 경쟁력 약화로 홈플러스·발란·정육각 등 일부 업체는 잇따라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고 있다.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장기화된 내수 침체 속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유통기업은 시장에서 이미 도태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는 글로벌 시장에서 ‘K-패션’이 조명을 받기 시작한 반면 국내 소비 회복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 생존 전략으로서 해외 시장 진출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패션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이제는 해외 시장 진출 여부가 기업의 명운을 가를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주요 패션 기업과 유통 플랫폼들은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있다.
◆“내수 의존 구조론 한계”…글로벌 무대 진출 가속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글로벌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1년 일본에 첫 해외 자회사 ‘무신사 재팬’을 설립한 이후, 현지화 전략을 바탕으로 마케팅 및 유통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올 하반기에는 중국 시장에도 본격 진입한다. 무신사는 샤오홍슈, 티몰, 더우인 등 중국 주요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하는 동시에 상하이 지역에 ‘무신사 스토어’와 자체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을 잇따라 열 예정이다.
외국인 관광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전략도 눈에 띈다. 실제로 2분기 서울 성수동 ‘무신사 스토어 성수@대림창고’의 중국인 관광객 거래액은 전 분기 대비 257% 증가했다. 이 중 60% 이상은 10~20대 소비자였다.
LS증권 오린아 연구원은 “무신사의 글로벌 연평균 거래액 성장률은 260%에 달한다”며 “해외에서의 성과가 향후 실적 차별화를 이끄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무신사는 2026년까지 일본 오프라인 유통망 확대를 계획 중이다. 일본 총판 경험이 있는 브랜드 ‘마뗑킴’을 앞세워 본격적인 현지 확장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브랜드 단위’ 해외 진출 활발한 업체 어디?
브랜드 단위의 글로벌 진출도 이어지고 있다. 미스토홀딩스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중화권 1호점을 개점했다. 이 회사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중국 유통권을 다수 확보하고 있으며, 현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꾸준히 접점을 넓히고 있다.

백화점 업계도 패션을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일본 시장을 중심으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K-패션을 적극 알리고 있다. 지난해 도쿄에서 상·하반기 두 차례 팝업을 개최한 데 이어 올해는 오사카에서 21개 브랜드가 참여한 장기 팝업을 성황리에 진행했다.
현대백화점은 자체 수출 플랫폼 ‘더현대 글로벌’을 통해 일본, 대만, 홍콩 등으로 진출국을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 패션 플랫폼 ‘누구’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20대 여성의 60%가 한국 패션을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K-패션의 영향력을 방증하고 있다.
◆에이블리, 日 물류센터 구축…해외 전환 시도, 성과는 ‘글쎄’
후발주자인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는 포화 상태인 내수 시장을 넘어 일본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 중이다. 현재 성수동에 글로벌 전용 풀필먼트 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자사 일본 쇼핑몰 플랫폼 ‘아무드’의 물류를 전담할 예정이다. 알리바바그룹으로부터 2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일본 시장 공략 자금도 확보했다.
국내에서는 경쟁력 약화가 뚜렷하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6월 기준 에이블리의 월간활성사용자(MAU)는 전월 대비 9% 감소했다. 결제금액도 17% 줄어든 868억원에 그쳤다. 중국계 패션 플랫폼 ‘쉬인(SHEIN)’은 같은 기간 MAU 220만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00만명을 돌파했다. 사용자당 평균 결제액도 쉬인(10만원)이 에이블리(6만1200원)를 크게 앞질렀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공략에 따른 마케팅비와 운영비 증가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경우, 에이블리의 국내 사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그재그, 여전히 내수 집중…글로벌 진출 시급
여성 중심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는 아직 해외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이 플랫폼은 국내 보세 패션 중심의 경쟁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버티컬 패션 플랫폼의 연매출 규모는 무신사가 1조원 이상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에이블리는 약 3000억원, 지그재그는 20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그재그가 글로벌 확장을 이뤄내지 못하면 중장기 성장 정체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한다.
국내 패션 산업은 내수 한계와 가격 경쟁 심화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가운데 무신사와 현대백화점 등 선도 기업들은 발 빠른 글로벌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으며, 브랜드별 해외 진출도 활기를 띠고 있다. 후발 플랫폼들은 전략적 방향성과 성과 확보 측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결국 세계적 인기를 ‘실질적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역량이 향후 업계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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