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육질·큰 몸집 계통 선별 교배
질병에 강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튼튼’
외산 육계에 비해 느린 성장 속도 과제
전체 도계 수 중 2%… “생산성 개선 연구”
초복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1일 전북 부안의 ‘우리맛닭’ 전문 백숙집에서 만난 유모(91)씨가 우리맛닭에 대한 극찬을 쏟아냈다. 벌써 수년째 이 집 단골이라는 유씨는 가족 행사는 물론 지인들이 놀러 오면 꼭 이 가게를 데려온다고 했다. 부안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맛닭을 직접 기르고 요리하는 곳이라서다. 이날 유씨를 따라 우리맛닭을 처음 맛봤다는 강모(69)씨는 “시중에 파는 닭은 살이 너무 물렁물렁하거나 퍽퍽하고 느끼한데 이 닭은 너무 담백하고 씹는 느낌도 맛도 좋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강씨의 만족도를 증명하듯 강씨 자리에는 깨끗하게 발라 먹은 닭 뼈가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부드럽고 깊은 풍미를 가진 ‘우리맛닭’
‘우리맛닭’은 농촌진흥청이 맛 좋은 계통과 성장이 빠른 계통, 알을 잘 낳는 계통을 선별 교배해 2014년에 개발한 토종닭 브랜드다. 새빨간 벼슬에 검은색과 갈색 깃털이 섞여 있으며 육계보다 몸집이 큰 것이 특징이다. 특히 기존 토종닭의 장점인 고기의 깊은 풍미는 살리고 느린 성장 속도와 질긴 육질, 두꺼운 껍질 등은 개선됐다. 이처럼 토종닭보다 부드러운 육질 덕에 고령층, 어린이 등 다양한 소비 계층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영양 면에서도 월등하다. 우리맛닭은 육계에 비해 필수지방산으로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인 DHA 함량이 높아 두뇌 발달, 인지 기능 향상, 심혈관 건강 등에 도움이 되며 높은 불포화지방산 비율을 갖고 있어 혈중 콜레스테롤 개선, 혈관 건강 유지 등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이 농촌진흥청의 설명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가금연구센터 소속 추효준 농업연구사는 “우리맛닭은 단순히 우리 고유의 토종 품종이라는 정체성 외에도 기능성·풍미·식감·건강성까지 겸비한 고품질 닭고기로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향후 우리맛닭의 다양한 산업적 활용 가능성과 소비자 신뢰 확보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반 육계에 비해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도 우리맛닭의 장점 중 하나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질병에도 강해 키우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우리맛닭 농장과 식당을 16년째 운영 중인 라현환(68) 우술재황토촌 대표는 “일반 닭들은 너무 덥거나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질병이 생기면 금방 죽는 데 우리맛닭은 죽는 일이 거의 없고 활동성도 좋다”며 “우리맛닭의 맛과 영양을 한번 경험한 고객들은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고 우리맛닭의 우수성을 강조했다.

◆고유의 맛 지키기 위해 개발… 생산성이 문제
이러한 우리맛닭은 우리 고유의 맛을 지키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로 개발이 시작됐다. 삼계탕과 닭볶음탕, 치맥(치킨+맥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닭 요리를 즐기고 이제는 ‘K푸드’라는 이름으로 해외에서까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원재료인 닭이 외국 개량종인 것은 아쉽다는 문제의식도 한몫했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전망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인이 1인당 평균 소비한 닭고기는 20마리를 훌쩍 넘었을 정도로 한국인의 닭고기 사랑은 특별하다.
특히 닭고기를 삼계탕이나 백숙 등 보양식으로 소비하는 한국에서 복날이 있는 여름에 닭고기 수요는 급증한다. 특히 7월은 도축 마릿수가 1억마리를 살짝 웃도는데, 도축 마릿수가 가장 적은 2월과 비교하면 3000만마리 더 많은 수치다.
다만 육계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우리맛닭의 시장화를 가로막고 있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알을 많이 낳고 사료를 적게 먹어도 살이 많이 찌고 빨리 성장한다는 것이다. 흰색 몸통에 빨간색 볏을 가진 코니시 크로스 품종은 한 달이면 1.5㎏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빠르게 자란다. 반면 천천히 크게 자라는 토종닭은 그 세 배인 석 달가량 길러 2.4㎏가량 크고, 우리맛닭은 50∼60일 정도에 토종닭과 비슷한 크기로 자라 농가의 선호도가 떨어진다.
이 탓에 애써 개발한 우리맛닭의 도계(닭 도축) 마릿수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기존에 정부 주도로 이뤄지던 씨닭 분양을 민간 종계장 2곳(소래축산, 한협원종)으로 넘기는 등 정부가 우리맛닭 보급 확대를 위한 갖가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2021년 2247만여마리던 우리맛닭 도계 마릿수는 꾸준히 줄어 지난해(1976만마리) 2000만마리 밑으로 떨어졌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닭 도계 마릿수의 2% 수준에 불과한 규모다.
규모가 작으니 도계 공장을 찾기 어려운 점도 우리맛닭 접근성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특정 규모 이상의 도계를 하지 않는 한 식당 업주가 직접 닭을 손질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라 대표는 “제가 농장을 운영 중이니까 저희 식당에서 나오는 닭은 직접 손질하고 간혹 다른 식당에서 손질 부탁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손질을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R&D와 고급화 추진
정부는 지속적인 연구개발(R&D)을 통해 우리맛닭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농촌진흥청은 현재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 혈통 개량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는 기술 개발을 통해 정밀 육종 기반을 고도화하기 위한 연구를 추진 중이다.
단순히 육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고급화로 가는 방향도 검토될 수 있다. 육계와 달리 깊은 풍미와 쫄깃한 식감을 가진 우리맛닭의 장점을 살려 고급화시킬 경우 상대적으로 느린 성장 속도로 인한 높은 가격을 상쇄할 수 있어서다. 프랑스의 ‘브레스닭’이 대표적 사례다. 브레스닭은 최소 4개월 이상 길러 체중이 1.2㎏을 넘어야 도축할 수 있으며, 도축 2주 전 우리 안에서 집중적으로 브레스 지역에서 생산한 옥수수, 밀, 우유를 먹여 지방 함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국가로부터 정식 인증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만든 브레스닭 한 마리에 최소 43.2유로(약 7만원)를 해도 프랑스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육질과 육향이 다르다는 믿음 때문이다.
추 농업연구사는 “우리맛닭의 생산성 개선을 위해 원종집단의 능력개량에 필요한 양질의 육종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한 유전능력평가 체계를 확립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라면서 “유전능력평가의 정확도와 효율성을 향상하기 위해 유전체정보를 활용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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