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마다 혁신위 띄워도 쇄신 ‘빈손’
인요한 6대 혁신안 당 지도부 불수용
김문수 혁신위는 의원들 반대로 무산
혁신위원장 망언·당내 혼란에 불발도
2005년 ‘홍준표 혁신’만 유일하게 성공
윤희숙 혁신안 두고 “자기 정치” vs “성과”
지도부·혁신위 ‘이원구조’가 쇄신 발목
당 주류 반발 잠재울 구조적 대책 필요
6·3 대선 패배 이후 내부 혼란 수습과 당내 쇄신을 맡은 국민의힘 혁신위원회가 곧 운명의 기로에 설 전망이다. 위기 때마다 혁신위를 띄웠지만 번번이 혁신안이 무산된 보수정당 특유의 ‘용두사미 혁신’이 이번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 주류 세력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는 구조적 대책 없이는 진정한 혁신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에서 과거 출범했던 혁신위는 대체로 실패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기껏 마련한 혁신안이 수용되지 않거나 혁신위 자체가 논란에 휩싸여 빈손으로 활동이 끝난 경우가 많았다.
◆친윤·친박 집단 반발에 무산
가장 최근 사례는 2023년 인요한 혁신위다. 당시 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인요한 의원은 지도부·중진·친윤(친윤석열) 인사 불출마와 험지 출마를 앞세운 6대 혁신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김기현 대표 등 당 지도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 의원은 이들의 공천을 직접 배제하겠다며 자신을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추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김 대표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동력을 잃은 인요한 혁신위는 활동 종료 시한에 앞서 조기에 해산을 결정했다.

2016년 새누리당 시절 김용태 혁신위도 비슷한 사례다. 당시 새누리당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직후 비박(비박근혜)계 3선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당시 당을 장악한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계의 계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었지만, 친박계는 선임 다음 날부터 집단적인 반발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김 위원장 선임 이틀 뒤인 5월17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고 혁신위의 혁신안을 당론으로 간주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하려 했지만, 친박계가 대거 불참하면서 전국위 개최가 아예 무산됐다. 김 위원장은 직후 사퇴했다.
2014년 ‘김문수 혁신위’도 당내 반발에 좌초한 경우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임명한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은 국회의원 세비 동결과 출판기념회 금지 등을 제안했다. 이 혁신안은 현역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의총에서 추인을 받지 못했다. 특히 혁신안에는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경우에도 세비를 지급하지 않도록 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이에 대해선 혁신위원 중 일부도 반대했다고 한다.
◆위원장 망언과 당내 혼란에 불발되기도
혁신위원장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혁신안이 불발된 사례도 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최초로 꾸려진 자유한국당 혁신위가 이에 해당된다. 혁신위원장을 맡은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 중진들의 탈당을 권고하는 등 강도 높은 쇄신안을 내놓았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제명됐지만, 이를 제외하면 혁신위가 오히려 당을 우경화했다는 내부 비판도 잇따랐다. 일본군 위안부 비하 발언과 극우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옹호 발언 등 류 위원장의 과거 막말도 재조명받으며 논란이 됐다.
2022년 이준석 대표 체제에서 출범한 최재형 혁신위는 당 내부 혼란에 휩쓸려 힘을 잃은 케이스다. 당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의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 결정 이후 혁신위를 띄운 이 대표는 대표직을 상실했다. 권성동·주호영·정진석 의원 체제로 당 지도부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혁신위는 유명무실해졌다.

◆유일한 성공 사례는 ‘홍준표 혁신위’
홍준표 혁신위는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에서 출범한 혁신위 중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홍준표 의원을 앞세워 혁신위를 띄웠다. 홍 위원장은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 박 대표의 재신임 여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때 지도부와 대립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홍준표 혁신위는 대선 1년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 공직선거 후보 공천 시 일반 국민 의사 50% 반영 등을 제안했다. 당시 대권 주자인 박 대표에게 불리한 방향임에도 박 대표가 이를 대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공적인 혁신 사례로 남게 됐다. 덕분에 한나라당은 다음해 지방선거와 17대 대선, 2008년 18대 총선까지 3연승을 거뒀다. ‘홍준표 혁신안’은 현재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을 정도로 국민의힘의 기틀을 잡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지도부와 혁신위가 따로 존재하는 이원구조 자체가 쇄신의 발목을 잡아 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도부가 혁신위에 전권을 준다는 것은 스스로 죽겠다는 길이나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혁신위가 아무리 강도 높은 안을 가져와도 지도부가 받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끝날 수밖에 없다”며 “당론으로 전권을 보장한다는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평론가는 “총선이 3년이나 남아 있는 마당이니 현역 의원들에게 두려운 것은 민심이 아니라 당대표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희숙 혁신위’ 두고 엇갈린 평가
현재 활동 중인 ‘윤희숙 혁신위’에 대해서는 당 안팎에서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친윤계는 윤희숙 위원장이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윤상현·장동혁 의원의 실명을 들어 인적쇄신을 요구한 데 대해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영남권 의원은 윤 위원장에 대해 “혁신이 아니라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친한(친한동훈)계 역시 “윤 위원장이 양비론으로 친한계에 책임을 묻고 있다”는 불만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도 20일 당대표 선거 기자회견에서 윤 위원장이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윤상현·장동혁 의원을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한 것과 관련해 “당이 쪼그라드는 방향으로 혁신한다면 상당한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반면 당 바깥에선 윤 위원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박 평론가는 “구체적으로 쇄신 대상을 지목한 것 자체가 성과”라며 “설령 혁신안이 채택되지 않는다고 해도 국민의힘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비전과 방향에 대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당내에서 여론을 성숙시키는 작업 없이 인적쇄신 대상을 지목하는 방식은 조금 미숙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방향성은 알겠지만 방법론 측면에서 잘하고 있다 평가하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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