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대접한다”던 70대 여성 등 2명 사망, 9명 실종
일가족 3명 매몰 신고…수련원 찾은 신도 200명 대피
김동연 “인명구조 최우선”…‘특별재난지역 지정’ 요청
“자고 있는데 갑자기 쿵쿵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봤더니 거실이 반쯤 물에 잠겨 있었어요. 떠내려온 소파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20일 오전 수마가 할퀸 경기 가평군 일대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조종천의 물이 차올랐던 가평 대보교에는 나무 등 쓰레기기 잔뜩 쌓여 있었고, 대피령이 내려졌던 대보1리에서도 민가와 젖소 농장 등 시설이 무너져 아수라장이었다. 도로 곳곳에선 차들이 배수로에 빠지거나 나뒹굴었고 나무와 전봇대가 쓰러져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곳 주민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80대 남성 1명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대보1리 주민 김희상(74)씨는 “40년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고 아찔했던 상황을 전했다. 인근 대보2리 주민 김인배(70)씨도 “유리창이 깨지고 식탁까지 떠내려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새벽 4시부터 조종천에서 물이 불어나 새벽 5시쯤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다고 증언했다. 급격히 불어난 물은 순식간에 도로와 민가를 덮쳤고 산사태까지 겹쳐 마을 대부분이 진흙탕으로 돌변했다.
대보2리에선 이 지역 펜션에 놀러 왔던 가족들이 연락이 안 돼 다른 가족들이 소방대원들과 함께 해당 지역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인근 조종면의 한 수련 시설에는 경기 고양시에서 찾아온 종교시설 신도 200여명이 폭우로 고립돼 있다가 짐도 챙기지 못하고 몸만 빠져나왔다.

이곳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이수형(35)씨는 “차량 12대가량이 떠내려갔다”며 “20명 정도 투숙객이 있었는데 전기가 끊기고 전화가 안 돼 신고도 못 했다”고 말했다.
이날 산사태로 쓸려온 흙에 집이 무너지면서 70대 여성이 숨진 신상리 일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고 지점의 주택 3채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졌고 흙더미 속 파묻힌 냄비 등이 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숨진 김모(77)씨를 주민들은 밥 잘 차려주는 이웃으로 기억했다. 한 주민은 “친절한 동생이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참변을 당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전날 경로당에서 닭 수십 마리를 손질하고 밤늦게 귀가했다가 변을 당했다. 초복 날 마을의 지원을 받아 이웃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복 당일인 이날 새벽 무너진 집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김씨는 약속한 삼계탕을 상에 올리지 못했다. 수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는 홀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가평군에는 조종면 등에 오전 3시30분을 전후해 시간당 76㎜의 폭우가 쏟아졌으며 일 누적 강수량은 오전 9시30분 기준 197.5㎜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낮 12시 기준 김씨를 비롯해 2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오전 4시20분쯤에는 대보리 대보교에서 40대 남성이 물에 떠내려오다가 다리구조물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오전 11시25분쯤에는 가평군의 한 캠핑장에서 텐트가 토사에 매몰됐다며 텐트에 40대 부부와 10대 아들이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또 산하리 계곡지역에서 3명이 실종됐다는 신고도 들어왔다.
소방 당국은 8∼14개 소방서에서 51∼80대의 장비를 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내렸다.

이날 오후 가평군을 방문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인명구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고, 도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가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요청했다.
김 지사는 가평군 상면 대보교와 통합지원본부를 찾아 신속한 피해복구를 지시하고,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전화해 가평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즉각 지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현장을 살펴본 김 지사는 “너무 안타깝다”며 “모두 복구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민들이 빠른 일상을 회복하도록 해달라. 교량 안전진단 등 추가 피해가 없도록 조치하고 도에서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당부했다.
현장 방문에 앞선 이날 오전 경기도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선 비 피해 상황을 보고받은 뒤 실종·매몰자 등에 대한 적극적 수색을 지시했다. 또 가용 중장비를 총동원할 것과 현장 파견 공무원의 안전 확보 등을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