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이 불길 휩싸이며 대피 지연
사방 뚫린 필로티구조… 피해 키워
중상자 4명 아직 의식 회복 못해
발화 지점 스프링클러 설치 안 돼
국과수 등 천장전선 단락흔 확인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어요.”
17일 밤 경기 광명시 소하동의 한 아파트 3층에 머물던 A씨 가족은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이처럼 전했다. 1층 주차장의 천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발화한 불은 불쏘시개 역할을 한 필로티 구조를 타고 위층으로 향했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지상 주차장은 순식간에 아궁이처럼 불길에 휩싸였다. A씨 가족 3명은 놀란 마음을 다잡으며 집 안 화장실로 향했다. 거세진 불길 탓에 탈출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화장실에 웅크린 채 젖은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119에 반복해 위치를 알리며 50여분을 버텼고 집 문을 열고 들어온 소방대원들에게 가까스로 구조됐다.

20일 소방과 경찰 등에 따르면 17일 오후 9시10분쯤 광명시 소하동의 10층짜리 아파트(45가구·116명 거주) 1층 필로티 주차장에서 불이 나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진 주민 3명이 숨졌다. 또 9명이 중상을 입고 이 중 4명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주민 55명도 연기를 마시는 등 다쳤다. 화재 당시 1층 주차장을 빽빽이 채운 25대 차량은 대부분 불에 탔다. 일부 주민이 “차량 사이에서 ‘펑펑’ 소리가 난다”며 119에 전기차 화재로 오인해 신고한 이유다.
거주자 절반 이상이 인명피해를 입은 이유를 두고 전문가들은 필로티 구조를 지목했다. 불이 난 아파트는 1개동 규모의 이른바 ‘나홀로 아파트’이다. 1층은 기둥만 둔 채 주차장으로 쓰인 필로티 구조로, 나머지 층에는 주민들이 거주했다. 2014년 준공된 아파트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은 아니었다. 소방시설법이 규정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은 2005년 11층 이상, 2018년 6층 이상으로 확대됐다.
다수의 인명피해를 낸 2015년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역시 필로티 구조가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적받았다. 1시간20여분 만에 진압된 광명 아파트 화재에서도 입구가 화염으로 막히면서 중상자 대부분이 1, 2층에서 발견됐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외벽 없이 개방된 필로티는 화재가 발생하면 바람을 그대로 통과시켜 불길과 연기를 위로 빠르게 밀어 올린다”며 “천장 전선 배관이 단열재에 싸여 있다면 전체가 가연물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래 주차된 차량의 연료와 타이어, 내장재 등이 화재의 기폭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기소방재난본부, 한국전기안전공사 등은 합동감식을 진행한 뒤 1층 장애인 주차구역 천장에서 전선 단락흔을 확인했다며 발화지점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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