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경상 최대 400㎜ 이상…중대본 3단계
“기후변화로 집중호우 강도·빈도 증가 추세”
충남 서산 등을 중심으로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수준의 ‘극한호우’가 발생했다. 기상청은 19일까지 전라권과 경상권을 중심으로 최대 400㎜, 충청권엔 최대 300㎜의 폭우가 쏟아질 것으로 예보했다.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앞으로 집중호우의 빈도는 물론 강도 역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17일 정례 브리핑을 열고 “이날부터 19일까지 전국적으로 시간당 50~80㎜의 집중호우가 내릴 것”이라며 “중부지방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강한 강수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보했다.
시간당 50㎜의 비는 거리와 도로 곳곳이 물에 잠기면서 정상적인 보행과 차량 운행이 어려워지는 수준이다. 시간당 70㎜ 이상일 경우 지대가 낮은 하천 부근의 차량이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200년 빈도’ 극한호우…중대본 ‘3단계’ 가동
일부 지역에는 전날부터 이틀간 누적 강수량 400㎜를 넘기는 등 ‘물 폭탄’이 떨어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집계된 누적 강수량은 충남 서산 519㎜, 충남 홍성 414.3㎜ 등이다.

특히 서산에는 이날 오전까지 440㎜에 육박하는 비가 쏟아졌는데, 이는 1968년 1월 서산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일강수량 역대 최고치에 해당한다. 기상청은 서산 등 충남권에 내린 비의 양이 ‘200년에 한 번 내릴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서산에는 이날 오전 1시 46분부터 1시간 동안 114.9㎜의 비가 내려 1시간 강수량으로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산에 시간당 110㎜가 넘는 비가 쏟아진 것은 100년 만에 처음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굉장히 강한 집중호우 형태의 강수 패턴이 나타날 수 있어 앞으로 시간당 강우량이 110㎜가 넘는 지점이 더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에는 누적 139.8㎜의 많은 비가 관측됐다. 서울시는 전날 오후 4시 30분부터 강우 상황 ‘주의’ 단계인 1단계를 발령하고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현재 시내 하천 29곳이 통제됐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대규모 재난 발생 가능성 등에 따라 이날 오후 풍수해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중대본 대응 단계도 최고 수준인 3단계로 상향했다. 중대본 3단계 가동은 2023년 이후 2년 만이다. 당시에는 태풍과 호우로 3단계를 발령했다.
거센 비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전날 저녁 7시 4분쯤 경기도 오산시에선 고가도로 옹벽이 무너지면서 도로를 지나던 차량을 덮쳐 40대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날 충남 서산에서도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진에서도 실종 신고된 1명이 침수된 지하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 구리시 인창동 인창삼거리에서는 전날 오후 8시 6분쯤 버스 뒷바퀴가 포트홀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인천에서도 주택이 침수되고 도로가 통제되는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
19일까지 전라·경상 최대 400㎜ 이상 비 온다
이번 비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남서쪽에서 북상해 들어오는 수증기와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건조한 공기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장마전선이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길게 늘어서면서 ‘띠’ 형태의 비구름대가 만들어졌고 해당 지역에 비를 집중시켰다.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날부터 19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전라권과 경상권을 중심으로 최대 400㎜, 충청권 최대 300㎜, 경기 남부에 최대 200㎜, 강원내륙 최대 150㎜ 등이다.
비는 19일까지 이어지다 점차 그칠 것으로 보인다. 20일부터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상공을 완전히 덮으며 중부지방의 장마가 종료되고, 열대야와 폭염 특보가 재개될 가능성이 크다.
“집중호우 강도·빈도 증가 추세…더 잦을 것”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장마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여름철 장마가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에서 형성된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수일에 걸쳐 약한 비가 지속적으로 내리는 형태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존의 두 고기압 외에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서쪽 고산지대에서 발달된 뜨겁고 건조한 티베트 고기압,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가 충돌하면서 정체전선이 더욱 복잡하게 활성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비의 강도와 빈도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적으로도 이러한 변화는 뚜렷이 확인된다. 1980년대 서울에서는 하루 80㎜ 이상 비가 온 날이 5일을 넘겼던 해가 없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2010년대엔 각 3년씩이나 있었다.

지난해에는 시간당 100mm를 넘는 비가 무려 16차례 발생했다. 지난 8일에도 서울 양천구에 시간당 70mm에 가까운 비가 내렸다.
대기 중 수증기가 늘어난 것도 집중호우의 또 다른 원인으로 추정된다. 한반도는 남중국해와 서태평양에서 수분을 공급받는데, 이 수분량이 늘어날수록 더 많고 잦은 비가 내릴 수 있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현호 공주대 교수(대기과학과)는 YTN에서 “최근 내리는 비가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서 저기압이 한 번씩 통과할 때마다 매우 강한 비가 내리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며 “대기 중에 수증기량이 많아지면 지금처럼 이렇게 한 번에 강하게 쏟아지는 비의 형태가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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