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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세기 클래식 음악 다시 흐를까

입력 : 2025-07-19 06:00:00 수정 : 2025-07-17 19:39:53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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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초까지 각광 받던 오페라·교향곡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냉전으로 힘 빠져
히틀러 ‘퇴폐 음악’으로 폄하 작곡가 탄압
전쟁 끝난 후에도 청중들의 외면 이어져
되살릴 해법으로 영화음악·게임 등 주목
“대중음악과의 대결 구도·편견 걷어내야”

전쟁과 음악/ 존 마우체리/ 이석호 옮김/ 에포크/ 2만5000원

 

문학, 회화, 건축, 연극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예술 장르들은 20세기와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새로운 걸작을 내놓으며 번성하고 있다. 그런데 왜 클래식 음악만큼은 정전(正典)이라 부를 만한 작품의 계보가 끊긴 것처럼 보일까? 19세기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를 빛낸 위대한 작곡가들의 면면과 비교하면, 20세기 중반 이후를 대표할 불멸의 오페라나 교향곡은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존 마우체리는 “히틀러가 금지한 음악은 종전 후에도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로 귀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할리우드 영화음악 등 20세기 망명 작곡가들의 음악을 클래식 음악 핵심 레퍼토리로 다시 볼 것을 제안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의 인기가 왜 하락했는지, 20세기가 왜 이전 세기만큼 위대한 음악을 낳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 평론가, 음악 애호가가 의견을 내놓았지만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음악감독이자 교육자, 음악 제작자인 저자는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등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과 냉전이 만든 억압적 환경이라는 20세기 정치 격랑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다.

책에 따르면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오페라와 교향곡은 유럽 전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여흥이었다. 푸치니, 베르디, 바그너의 걸작은 청중의 열광 속에 무대에 올랐고,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시벨리우스, 슈트라우스 등은 혁신적인 어법으로 음악의 지평을 넓혔다.

존 마우체리/ 이석호 옮김/ 에포크/ 2만5000원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나치 정권의 부상은 이 전통을 끊어놓았다. 1차 대전 이후 음악은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 이념을 대변하는 도구가 되었고, 독재자들은 체제에 부합하는 음악 양식을 작곡가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퇴폐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작품의 연주를 금지하고 유대인 작곡가들을 탄압했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창작의 범위를 제한했다. 많은 작곡가가 이러한 압제를 피해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탄압받은 작곡가들의 작품은 복원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냉전이 걸림돌이 됐다. 서방 세계는 미국의 주도로 음악의 ‘비(非)나치화’를 추진했고,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로 ‘아방가르드’를 내세웠다. 표현의 자유를 표방한 아방가르드 음악은 국가와 평론가들의 비호를 받으며 새 시대의 음악으로 떠올랐고 곧 20세기 음악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러나 청중은 이를 외면했다. ‘새롭다’는 수식어 아래 등장한 많은 음악은 몹시 복잡하고 조성을 결여해 대부분의 사람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음악은 종종 혼란스럽고 소음이 가득했고, 극소수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지적 자극을 주었을지 몰라도 대중적 감상 측면에서는 멀어져 있었다.

폐기 처분된 음악과 청중이 외면한 음악 사이,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어떤 음악이었을까. 저자는 “대체물은 없었다”고 단언한다. 그는 이런 공백 탓에 오늘날 대중이 클래식 음악에서 멀어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오케스트라들은 동시대 작곡가의 신작 대신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의 고전 레퍼토리에만 의존하게 됐고, 오페라와 교향악 관객은 줄었으며, 운영 기관들은 재정적으로 점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이 20세기 마지막을 기념해 연 1999년 12월31일 콘서트에서 푸치니 오페라 아리아 두 곡을 제외하면 20세기 작품을 하나도 연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단적인 예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현대 클래식 음악을 더욱 대중적이고 생명력 있는 예술로 되살릴 묘책은 없을까? 저자는 그 해답을 ‘잊힌 보물들’에서 찾는다. 그가 보기에 20세기의 위대한 유산은 영화음악과 뮤지컬, 게임 음악에 숨어 있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영화음악에 주목한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 유대인 맥스 스타이너가 영화 ‘킹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에서 선보인 스코어(악보)는 바그너가 ‘니벨룽의 반지’에서 보여준 작곡 기법이 미국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히틀러가 ‘퇴폐 음악가’로 낙인찍었던 할리우드 유성영화 1세대 작곡가들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 기법을 계승해 영화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의 ‘적통’이 됐다.

그럼에도 할리우드 영화음악에 몸담은 많은 작곡가의 음악은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잔혹하게 폄하되어 왔다. 영화음악은 작곡 기간이 짧고, 제작자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며, 화면 위 시각적 요소에 종속된다는 등 이유에서다. 상업성이 지나치다거나,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도록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며,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도 따라붙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중음악과 진지한 음악을 대결 구도로 여기는 편견을 멈추고, 영화음악을 2등 시민처럼 여기는 상황을 거부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또 무대 밖에서 잊힌 20세기의 레퍼토리를 위한 새로운 자리를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에 마련하자고 호소한다.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20세기 음악사가 실은 정치와 이념에 의해 ‘허락된’ 이야기에 불과하며, 그 공백은 언제든 복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가 이미 사랑하는 음악, 우리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이 이끄는 곳에 있는 미지의 음악을 죄책감 없이 당당히 받아들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이롭게 할 것이다.” 원제 The War on Music.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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