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전담팀 구성…‘중대시민재해 조항 적용’ 등 검토
‘아스콘 소성변형’에도 문제없다 진단…점검 이상 無
김동연 지사 “사고원인 파악…분명한 책임 소재 따져야”
지나던 승용차 운전자의 생명을 앗아간 경기 오산시 옹벽붕괴사고의 과실을 가리기 위해 경찰이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둑 수문이 열리며 물이 쏟아지듯 9초 만에 무너진 옹벽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고, 오산시가 이른바 ‘배부름 현상’이 불거진 옹벽 관리에 책임을 다했는지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사고 현장을 방문한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사고원인을 파악할 수 있도록 경찰과 협조하겠다”며 “분명한 책임 소재를 따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 중대시민재해 처벌 대상은 시·군 단체장…사고 도로 통제 안 해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4분쯤 오산시 가장동 가장교차로 고가도로의 옹벽 상단이 붕괴하면서 아래 도로를 지나던 40대 남성 운전자 1명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옹벽 파편이 순식간에 아래로 쏟아져 내리며 매몰된 차량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이 사고로 차량 운전자 A씨가 사고 5시간 만인 전날 오후 10시쯤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사망했다. 당시 A씨 차량은 무게 180t, 길이 40m, 높이 10m가량 구조물에 눌려 심하게 파손된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대원들은 오후 8시50분쯤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로 차 안에 있던 A씨를 발견했으나 완전히 밖으로 꺼내는데 1시간이 더 걸렸다.
이 사고를 두고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 조항 적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사 결과 천재지변으로 인한 자연재난이 아니라 오산시가 평소 도로에 대한 정비나 보수,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면 최종 책임자인 이권재 오산시장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대시민재해의 처벌 대상은 지방자치단체장이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이번 사고와 관련, 13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편성하고 조항 적용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시민재해란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를 일컫는다. 사망자 1명 이상이 발생하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했을 때 적용된다.
조항의 공중이용시설 중 도로란 연장 100m 이상, 옹벽 높이가 5m 이상인 부분의 합이 100m 이상에 해당한다.
사고가 난 옹벽은 총 길이가 330여m, 높이 10여m로 여기에 포함된다.


◆ 전날 사고 지점 민원 제보…市 “안전점검서 옹벽 이상 없어”
가장교차로 옹벽은 시설물안전법상 2종 시설물이다. 1∼3년에 한 차례 이상 정밀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사고가 난 도로는 ‘오산시도 1호선’으로 불리며, LH가 2011년 준공해 이듬해 오산시에 기부채납 방식으로 이양했다. 관리 책임은 오산시가 가졌으며, 지난달 옹벽 부분 안전점검 등에선 줄곧 이상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달 9일 민간 용역업체의 안전점검 확인 결과서에선 ‘해당 옹벽의 상부 아스팔트가 밀리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아스콘 소성변형이 지적됐으나 ‘포장 면에 중차량의 반복 하중 및 고온 및 기후의 영향으로 변형이 발생했다. 안전에 문제는 없다’는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차량의 하중과 기온의 영향일 뿐 안전상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사고 하루 전인 15일에도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오산시 도로교통과에 ‘고가도로 오산~세교 방향 2차로 중 오른쪽 부분 지반이 침하하고 있다’는 민원이 접수됐으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민원인은 “붕괴가 우려된다. 조속히 확인 부탁드린다”며 침하 구간의 주소와 사진까지 첨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산시는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4시쯤 가장교차로 고가도로 수원 방향의 차로에서 지름 수십㎝ 도로 파임(포트홀)이 발생하자 오후 5시30분쯤부터 이 방향 2개 차로를 통제하면서 고가도로 아래 도로는 통제하지 않았다.

◆ 13명 규모 수사전담팀 편성…시장 “옹벽 무너질 거라 예상 못 해”
일각에선 포트홀이 발생해 빗물이 도로 내부로 스며들고 있던 데다 한꺼번에 많은 비가 쏟아져 붕괴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도로 통제를 일부만 하는 바람에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 직전인 오후 5시 44분~6시44분쯤 오산시의 시우량은 41㎜를 기록했다
이권재 시장은 이와 관련, 이날 옹벽 붕괴사고 현장을 방문해 “어제 재차 포트홀 신고가 있어 현장 안전조치를 하고 이틀 뒤인 18일에 포트홀을 보수하는 공사를 하려고 업체 선정까지 마친 상태였다”며 “이후 도로 위에 포트홀이 생기면 차가 달리면서 위험할 수 있으니 교통 통제를 한 건데, 옹벽이 무너질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고 해명했다.
오산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세교 신도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이용하는 도로로, 아파트 단지와 불과 100여m 떨어졌다”며 “수원·평택 방향으로 출퇴근하는 차들로 정체가 빚어지는, 동네 한복판인데 사고가 발생한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복구 작업이 다 끝나지 않아 현장 감식도 하지 못한 상태”라며 “감식을 마치고 과실을 밝히기 위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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