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전반 관련예산 공개 안 해
예산집행 정확도마저 담보 못해
기후예산 체계 개편 대수술 필요
기자 시절, 정부가 주최하는 기후 관련 행사에 가면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마중물’이었다. 정치인, 공무원 할 것 없이 다들 마중물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주로 정부의 기후예산이 민간 자본을 유치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에서 사용됐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기후예산은 엉망진창이다. 이제는 안다. 기후예산 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한국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예산이 필요할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매년 상당한 수준의 예산이 집행돼야 한다는 것만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수준이다.

물론 기본계획상으로는 얼마나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는 존재한다. 기후대응을 위한 최상위 법정계획인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탄소중립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까지 약 89조9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5년간(2023∼2027년) △부문별 감축 대책 54조6000억원 △기후변화 적응대책 19조4000억원 △녹색산업 성장 6조5000억원 순이다.
하지만 이는 각 부처의 기후대응 관련 사업 예산을 단순히 합산한 것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난 정부와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삭감돼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2027년까지 89조9000억원 투자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한국의 기후예산 규모가 유럽연합(EU) 같은 주요국과 비교해 최대 7분의 1 수준으로 부족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현 수준으로는 철강·화학·시멘트 등 온실가스 다배출업종의 저탄소기술이 2035년까지 상용화되기 어렵다는 것이 협회의 결론이었다. 폭염 대비나 해수면 상승 대비 등 앞으로 더 중요한 기후적응에 필요한 예산까지 고려하면 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사업내역 미공개로 기후예산이 제대로 이행됐는지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회 기후재정포럼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제기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현재 계획은 부처에서 하는 사업을 모은 다음 연도별로 일정 정도로 늘어나는 정도로 추계한 것이다. 그 안에 들어가는 구체적인 사업이나 예상 규모는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과제를 하면서 사업과 예산 내역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환경부는 못 준다고 했다. 국무조정실로 가라고 해서 나중에 받았으나 규모는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국조실이 사업별 기후예산 규모를 외부에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이유는 더 충격적이었다. 총계가 정확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기본계획 안에 있는 부처별 기후대응 사업에 대해서 확인이나 검증을 한 적도 없었던 탓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기후대응 컨트롤타워인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또한 세부사업과 관련해 정확히 얼마가 집행 중인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문제는 ‘기후재정계획’이 수립돼야 할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기후재정계획은 연도별 감축목표에 맞춰 부문·연도·사업별 투자계획과 재원 조달 방안을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계획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탄녹위나 신설될 기후에너지부에 예산 심사나 조정 권한을 부여하는 등 거버넌스 체계 역시 혁신돼야 한다. 시민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기후예산 총량을 정하고 방향성과 이행을 점검하는 시스템 역시 필요하다.
기후예산은 일상과 직접 맞닿아 있다고 느끼기 어려운 주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한국 정부의 기후예산이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기후예산 삭감에 많은 이가 분노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그 관심의 반만이라도 한국의 기후예산에 향했더라면, 지금처럼 기후대응이 이토록 뒤처진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원섭 녹색전환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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