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이버의 레이스를 다룬 ‘F1 더 무비’(‘F1’)는 왜 파도치는 바다에서 시작했을까.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는 용병 드라이버로 데이토나의 야간 교대를 하며 서킷 위를 떠돈다. 포뮬러 1 드라이버가 등장하지만 ‘F1’은 질주의 스피드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조지프 코신스키 감독은 이미 전작 ‘탑건: 매버릭’에서 마하의 속도로 하늘을 나는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의 임무를 다뤘던 바 있다. 그렇기에 ‘F1’에서 다시 속도를 강조한다면 한계가 분명한 선택이 된다. 액션 영화의 카체이싱 장면이 그러하듯 빠른 템포의 편집과 화려한 역동성이 사라진 대신, 이 영화는 드라이버가 지상을 빠르게 달릴 때 발생하는 다운포스의 묵직함을 한결같이 묘사한다. 스크린에서 파도치는 바다보다 드높은 것은 서킷 노면 멀리 보이는 지평선이다. 드라이버 시점 숏 저편에 화면을 가득 메우는 노면이 펼쳐지고 레이싱 카를 모는 드라이버는 지상에 가장 낮게 가라앉아 있다.
‘F1’은 기계와 인간이 속력에서 파생되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탑건: 매버릭’과 닮았다. 그렇지만 소니는 강건한 신체와 정신력을 가진 매버릭과 여러모로 다른 인물이다. 매버릭은 정치 대립이 뚜렷한 미션 아래 마하의 속도에서 불굴의 정신력과 충성심을 증명하고, 소니는 노면과의 마찰과 다운포스의 압력으로 마모되어 망가질 위험 속에서 자신을 시험한다. 소니는 자신만만한 한편 불안으로 거세게 흔들리는 남자다. 이는 레이스에 앞서 소니가 치르는 의식에서 드러난다. 손목시계를 벗어 아버지의 사진 앞에 두고 포커 카드를 섞어 하나를 뽑아 주머니에 넣는다. 완전무결한 심신으로 무장한 군인 매버릭의 부드러운 면모는 연인 페니와 침실에서 미소 짓는 얼굴로만 드러날 뿐이다. 소니는 애초부터 완벽하지 못하다. 그의 육신은 한 차례 부서졌고, 정신은 무너져 내렸으며, 서킷에서 도망침으로써 챔피언의 꿈은 이루어질 길 없이 중단되었다.

그는 남몰래 연약하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휘청대는 남자다. 주목받는 만큼이나 오만한 신예 조슈아(댐슨 이드리스)와의 경쟁 혹은 사제 관계나, 상업 영화의 전략적 선택으로 끼어든 것만 같은 여성 기술감독 케이트(케리 콘던)와의 로맨스는 소니의 취약함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의 가장 대등한 파트너는 과거 팀 메이트였던 루벤 세르반테스(하비에르 바르뎀)이다. 루벤은 언제나 소니가 가장 취약한 모습일 때 그를 독대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소니가 샤워실에 있을 때, 팀에 분란을 가져온 뒤 창고에 숨어 얼음 목욕을 할 때, 레이스 직전 대기실에서 소니의 불안과 초조가 극에 달해 있을 때. 무엇보다 소니가 다시 한번 부서졌을 때 루벤은 소니와 마주 선다. 한번 실패했던 드라이버에게 서킷 노면은 파도보다 높은 장벽이다. 한때의 동료는 서로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길을 간다. 루벤은 소니의 상처를 다시 벌리는 일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이들이 가는 길에는 무엇도 마모되지 않는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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