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얀마는 열대에 속한 나라다. 계절은 여름, 우기, 겨울로 나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는 일 년 내내 땀이 흐르는 날들이 반복된다. 특히 우기에는 온종일 비가 쏟아져 도시 곳곳이 침수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후는 우리의 삶과 옷차림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미얀마 사람들은 바람이 잘 통하는 천으로 만든 상의에 전통적인 롱지(긴치마)를 입고 슬리퍼를 신는다.
나도 어릴 적부터 다양한 슬리퍼를 즐겨 신었고 대학 시절 내내 전통의상을 입어야 해서 구두보다는 슬리퍼를 선호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미얀마 사람들도 운동화나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그래도 슬리퍼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여전히 자유롭고 편한 신발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가장 크게 부딪혔던 것은 ‘신발문화’였다. 한국의 추운 날씨 탓에 양말과 운동화를 매일 신어야 했고 실내에서도 실내용 슬리퍼를 따로 준비해야 했다. 처음엔 별문제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첫겨울을 보내면서 발톱이 갈라지고 무좀이 생기면서 큰 건강 문제로 여겨졌다. 나는 생전 처음 겪는 증상에 당황했고 결국 피부과를 찾아야 했다.
여름이 되자 나는 다시 슬리퍼를 꺼내 신었다. 발은 다시 편안해졌고 무좀도 사라졌다. 하지만 겨울이 오면 똑같은 문제로 고생해야 했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나는 학교의 중요한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습관처럼 예쁜 슬리퍼를 신고 참석했는데, 행사가 끝난 뒤 친한 한국 선배가 “예진아, 한국에서는 중요한 자리에서는 옷차림을 더 신경 써. 다음엔 슬리퍼보다는 슈즈가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슬리퍼는 발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내가 운동화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슬리퍼를 ‘가벼운 차림’이나 ‘예의 없는 복장’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살아가면서 나는 점차 한국인들의 ‘신발에 대한 예민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병원, 학교, 회사 등 곳곳에서 실내용 슬리퍼 착용은 ‘청결’과 ‘예의’의 표시였고, 발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미얀마의 전통 가정에서는 맨발로 다니는 문화가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실내용 슬리퍼를 신는 일은 드물고, 바닥이 나무이거나 시원한 타일일 경우가 많아 더운 날씨에 맨발이 더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에서는 집 안에서조차 슬리퍼나 양말을 신는 것이 위생적이고 정돈된 생활처럼 여긴다. 나 역시 이제는 슬리퍼도 두 켤레씩 준비해 실내와 실외를 구분하고 살지만,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번거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하고 나니, 장한업 교수님께서 내린 “문화란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라는 정의가 가슴에 와닿는다. 미얀마는 더운 환경이기에 맨발과 슬리퍼 문화가 자연스럽지만, 한국처럼 계절 변화가 크고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사회에서는 운동화나 구두가 더 적합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문화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사회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그 다름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필요할 때는 나 자신도 변화시킬 수 있을 때 우리의 상호문화역량은 신장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먀닌이셰인(예진)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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