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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확률과 중환자실 [김태정의 진료실은 오늘도 맑음]

입력 : 2025-07-20 15:00:00 수정 : 2025-07-20 14: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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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확률.

이 확률은 ‘동전 던지기’ 확률이다. 절반의 확률은 때로는 터무니없이 낮은 확률로 보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희망을 걸어볼 만한 확률이기도 하다. 이 50%의 확률을 놓고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중환자실에서 이 50%의 확률은, 그래도 기대를 걸어볼 만한 가능성이 충분한 수치다.

최근 한 40대 남성이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정지로 응급실에 왔다. 그는 25분간 심폐소생술을 받고, 심장 기능이 떨어져 심폐기능을 보조하는 체외순환장치 치료도 받았다. 처음에 혼수상태였던 환자는 20일 동안 치료 후 심장 기능과 전신상태가 호전됐다. 그러나 각성과 인지 모두 회복이 안 돼 강력한 통증 자극에 눈만 살짝 뜰 수 있는 식물인간 상태였다. 의사소통은 전혀 불가능했다. 혈액검사와 뇌MR 등 뇌 손상 평가에서 환자는 중증도 이상의 저산소 뇌 손상이 확인됐다.

각성은 눈을 뜨고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인지는 본인과 주변을 인식하고 주변 여러 자극에 적절한 반응이 가능한지를 의미한다. 심정지 이후 저산소 뇌 손상이 있는 환자들은 두 가지가 모두 안 되거나 각성은 유지되지만 인지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각성이 유지돼도 인지가 되지 않는다면 가족을 알아보거나 의사소통하기가 어렵다. 저산소 뇌 손상 환자 진료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다만 이 환자의 경우 회복이 절대 불가능한 정도의 결과가 아니었다. 의료진이 판단한 호전 확률은 50%.

사실 지금까지는 저산소 뇌 손상 이후 의식 호전에 임상적 근거가 확실한 약물이나 이외 치료법은 없다.

의식회복을 위해 어떤 약을 써야 한다는 임상 지침이 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급성 뇌 손상 환자들에게 약물을 이용해 신경가소성을 촉진하고 의식회복을 높이기 위한 연구들이 진행돼 왔기 때문에, 이런 연구에서 적용된 약물을 선택해 투약해볼 수 있다.

신경계 중환자실에서는 각성도를 높이는 약물과 인지 호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약물을 선택한다. 인지 호전을 위한 약물 아만타딘은 원래 항바이러스제로 개발됐지만 항바이러스제 효과보다는 도파민 분비 촉진을 유발해 파킨슨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것이 확인된 이후 현재는 파킨슨 약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만타딘은 도파민과 관련된 뇌 회로 자극을 통하여 뇌 기능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 외상성 뇌 손상 환자에게 사용되기도 하고, 저산소 뇌 손상 환자에게도 의식 호전을 위해 투약하는 경우가 있다.

이 40대 남성 환자 역시 아만타딘을 약 2주간 복용한 후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잡는 등의 반응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뇌 기능 회복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는 항우울제를 추가 투약하며 4주 이후에는 입 모양으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정도까지 회복됐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

비록 저산소 뇌 손상 및 오랜 중환자실 치료로 팔다리 마비가 있었고 기관절개술을 유지해 목소리가 나오거나 스스로 가래를 배출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각성과 인지가 회복되며 적극적인 재활이 가능한 정도로 회복됐다. 그는 이후 재활의학과에서 열심히 재활에 임했다.

저산소 뇌 손상 환자에게 약물치료를 한다고 의식이 다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이 생각만큼 좋아지지 않는 사례도 많다.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크지 않아도, 중환자실에서 50%는 환자도 의료진도 많은 것을 걸어볼 만한 확률이다. 그 50%의 확률을 통과해 의료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잡아주는 환자가 있기에, 오늘도 그 높고도 낮은 확률에 기대서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들이 있다.


김태정 서울대병원 신경과·중환자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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