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희귀 유물 등 5만 여점 보유
中 감정 전문가 초청해 정밀 감정·토론
‘원각경금니사경’ 진품 판정하며 경탄
명나라 백자 향로·청나라 사발 등 호평
“시대별 中 문화의 정수 만날 수 있어
다보성 유물 가치 한 도시 가치 맞먹어”
“이 같은 대작은 중국에서도 본 적이 없다. 직접 눈으로 보게 되어 기쁘다. … 공력이 굉장히 깊다. 글자체가 고아하고 아름답다. 글자 간격 배치 또한 균일하고 곱다. 마음이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에서 글씨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보기 드문, 조맹부의 작품이 확실히 맞다.”
션지아신 중국 문화부 예술품평가위원회 서화 감정위원이 국내 다보성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조맹부(趙孟?)의 ‘원각경금니사경(圓覺經金泥寫經)’을 진품으로 판정하는 순간이다.

펼치면 길이 22m에 이르는 ‘원각경금니사경’은 검은 종이 위에 금글씨로 불경의 일부 내용을 빼곡히 적은 것이다. 상·하권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끝부분에 ‘연우 2년 춘월 삼보제자 조맹부 경서’라는 글이 보인다. 연우 2년 춘월은 중국 원나라 때로 710년 전인 1315년 봄철을 말한다. 삼보제자는 스스로 부처의 제자를 칭하는 것이고, 경서는 받들어 썼다는 뜻이다.
“조맹부는 중국 서예의 정통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구양순, 엄정경, 유공천과 함께 중국 4대 해서 서예가로 꼽힌다. 중국 최고 수준이란 얘기다. 불경은 해서체로 쓴다. 이 작품 역시 해서체로 쓰였다. … 왕희지의 작품을 최고 중의 최고로 치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의 작품은 전해지지 않는다. 오래전 몇몇 황제들이 구양순 등 명필들에게 명을 내려 왕희지의 작품을 똑같이 쓰게 했다. 풍승서가 모작한 작품을 일품으로 여긴다. 풍승서는 왕희지의 작품 위에 종이를 놓고 그대로 그렸다. 이를 ‘모본’이라 한다. 구양순은 눈으로 보고서 따라 썼다. ‘인본’이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모본과 인본이 있다. 가격을 매기자면 10억위안(약 2000억원)쯤 나갈 것이다. 다른 이가 쓴 인본이 2억8000만위안(약 560억원)에 팔린 적이 있다. 고대 예술가들이 왕희지를 모작한 작품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원각경금니사경’을 단번에 진품으로 판정한 이유는 뭘까.

“필체가 말해준다. 왕희지의 글씨를 그대로 쓰고 있다. 참으로 드물게 만날 수 있는 명품이다. 겉표지 또한 명대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임을 입증하고 있다. 예전 중국 최대 경매에서 조맹부의 작품 한 점이 1억5000만위안(약 300억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황실소장품이었고 명나라 향원병이 감정했다는 도장, 건륭황제가 쓴 ‘후손에 남긴다’는 글도 적혀 있었다. 고가 책정 이유다. 높은 가격이 매겨지는 작품은 오래되고 내용이 좋으며 서화의 경우 글자가 많아야 한다. 고대의 표구와 도장, 소장기록 등도 조건이다. ‘원각경금니사경’은 아무리 낮춰 잡아도 1억5000만위안 이상 나갈 듯싶다.”
다보성갤러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명품들을 공개했다. 중국 감정 전문가 2인을 초청해 7∼10일 나흘 동안 진행한 이번 행사는 3년 연속 치러온 고미술 프로젝트로, 소장 유물에 대한 정밀감정과 토론을 통해 한중 문화교류의 장을 확장했다.
다보성갤러리는 5만여점의 중국 고미술품과 희귀 유물을 보유한 사립 갤러리다. 작년 6월에는 중국 고미술 전문가 3인이 감정한 8m 길이 석각 회화와 다수의 도자류가 “진귀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방문 인사는 션지아신과 천커타오(陳克濤). 각각 서화와 도자를 감정했다.
션지아신 위원은 상하이시 서예가협회 부주석, 푸단대 특채 교수, 정부 공·검·법·사 기관의 감정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150건 이상의 감정 기고문을 통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천커타오는 상하이시 소장협회 상무 부회장이자 30년 넘게 명·청시대 고미술품을 연구해온 저명한 수집가다. 상하이 옥션 유한책임회사 선임고문으로, 실물 감식과 감정에 정통한 인물로 손꼽힌다.

“이곳 다보성갤러리에는 고대 홍산문화부터 송·원·명·청 등 시대별로 다양한 작품들이 있어 중국 문화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고 입을 연 천커타오 부회장은 도자로 빚은 대형 향로 앞에서 “상나라 청동기 향로를 발전시킨 것”이라며 “제사 때 이 향로를 정중앙에 두고 좌우로 촛대, 그 바깥쪽 좌우에 대형 도자기를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만 타이베이와 중국 남경박물관에 같은 것이 있지만 이들은 높이가 58㎝인 반면 다보성의 향로는 64㎝나 된다”고 부연했다.
‘명선덕청화철채사슴형향로’는 명나라 선덕 연간(1426~1435)에 제작된 백자 향로로, 사슴을 본뜬 조형미와 청화, 철채 기법이 조화를 이룬다. 사슴은 네 다리를 굽히고 온화한 자세로 앉아 고개를 돌려 앞을 응시한다. 등에는 작은 손잡이가 달린 뚜껑이 있어 내부에 향을 넣을 수 있다. 향을 피우면 사슴의 코와 입, 그리고 등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구조다. 명대 청화자기 제작기술이 몹시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청옹정분채묘금연리도발’은 연꽃이 풍성한 연못 속에서 헤엄치는 잉어들을 그린 청나라 사발이다. 연잎의 맥과 연꽃의 잎, 잉어 비늘 등의 윤곽선이 금으로 섬세하게 그려져 화려함이 극대화된다. 잉어는 거센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 용이 되었다는 전설처럼 관직을 뜻한다. 굽 바닥에 청나라 옹정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대청옹정년제’라는 문구가 있다. 황제나 귀족이 사용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천커타오 부회장은 “각 시대의 양식이 모두 모여 있다”며 “다보성의 유물들이 지닌 가치는 한 도시의 가치와 맞먹는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다보성갤러리 측은 마냥 좋아하기엔 아직 이르다. 국내 미술시장이 이 같은 고가의 고미술품들을 능히 감당해낼 만큼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쟁쟁한 진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이제는 해외 진출 또한 모색해 볼 만하다.
“예술품 감정은 단순한 가치평가를 넘어 아시아 문화의 맥을 잇는 통로이자 교류의 출발점”이라는 김종춘 다보성갤러리 회장은 “홍산문화 등 아직 소장품의 절반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철저한 분석과 검증으로 불신을 없애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박물관 등재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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