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주들, ‘이자 폭탄’에도 대출 대환 막혔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금융 대책이 시행되면서 수도권 아파트 보유자들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의 ‘타행 대환’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규제 강화로 인해 기존 대출을 다른 금융기관으로 갈아타려는 차주들이 제약을 받으면서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이 과도하게 제한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같은 은행 내에서는 기존 주담대를 갈아탈 수 있지만 타 금융기관으로 옮기려면 대출 용도가 ‘생활안정자금’으로 간주되어 최대 한도가 1억원으로 제한된다. 기존 대출이 1억원을 초과할 경우 사실상 타행 대환이 차단되는 구조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조치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금융권과 차주들 사이에선 “대환대출의 본래 취지인 금리 인하에 따른 이자 부담 완화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평균 대출액 1억5000만원…“대부분 대환 대상에서 제외”
1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2020년대 초반 저금리 시기에 혼합형(고정금리+변동금리) 주담대를 받은 차주들이 대거 만기를 앞두고 있음에도 마땅한 대환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당시 주담대 평균 금리는 연 2.45%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4~5% 수준까지 올라 이자 부담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사례도 많다.

실제로 6·27 대출 규제 시행 이후 주요 은행들은 내부 시스템을 개편해 기존 대출이 1억원을 넘는 차주에 대해서는 타행 대환 자체를 자동 차단하고 있다.
현행 규제상, 주택 매매 후 3개월이 지난 경우 해당 주택에 대한 주담대는 ‘구입 목적’이 아닌 ‘생활안정자금’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대환대출이 주담대 실행 후 6개월 이상 지나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규제와 제도 사이의 간극이 발생하면서 상당수 차주들이 대환 자체에서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같은 은행 내에서의 대환은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출 만기가 최대 30년으로 제한된다. 기존에 33~35년 만기로 대출을 받은 차주들은 월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전국 주담대 평균 잔액은 약 1억5000만원 수준이다. 수도권 실수요자의 경우 대출 규모는 이보다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도권 차주 상당수가 타행 대환에서 사실상 차단된 셈이다.
◆“대환은 가계부채 총량에 영향 없어…실수요자만 피해”
금융당국은 이번 규제가 가계부채 증가 억제를 위한 정책적 판단이라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대환대출은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동일한 금액을 재차 빌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총량 증가와 무관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수요자의 합리적 금융 선택권만 봉쇄됐다는 것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환대출은 차주가 금리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다. 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금융시장 효율성을 훼손하는 조치”라며 “금리 상승기에는 실수요자 보호가 더욱 중요하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는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락가락 정책…“금융 소비자 신뢰 저해”
정책의 일관성 부족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완화하며 대환대출을 적극 장려하는 입장이었다. 6·27 대책 이후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이 이뤄지면서 시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정책 방향에 맞춰 금융 계획을 세운다”며 “대환 장려에서 대환 차단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신뢰를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과 차주가 납득할 수 있는 과도기적 해법 없이 급작스런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혼선 해소하겠다”…실수요자 대책은 ‘미비’
정부는 6·27 대책 시행 이후 나타난 현장의 혼선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작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금리 부담이 큰 차주, 만기 도래 차주, 저소득층 및 무주택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 전문가는 “정책 목표와 시장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유연한 설계가 필요하다”며 “무조건적인 총량 억제보다는 실수요자 보호를 전제로 한 정교한 조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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