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곳서 건강한 노후를
진천, 전체 인구 중 노인이 19.6%
어르신 맞춤형 복지 생태계 구축
요양원 대신 케어팜… “심신 치유”
농촌지역 재택의료센터 운영도
자식보다 든든한 지자체
제천의 ‘경로당 점심 품앗이’ 사업
노인 일자리 창출·돌봄 결합 눈길
담양, 복지관 중심 일상생활 지원
“통합 돌봄·간병공동체 사업 성과”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A(78)씨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대장 부분의 구불결장암으로 ‘장루’(장 내·외부를 연결하는 장치)를 착용하고 있는 A씨는 주머니를 비우고자 화장실을 가야 할 때도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는 몸 상태다. 병원 퇴원 후 건강이 악화해 일상생활은 물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몸은 점점 말라가고 삶의 의욕은 바닥을 친 상태다.

A씨는 진천군 통합돌봄팀인 ‘돌봄스테이션’ 직원들이 2022년 처음 찾아왔을 때 의료·돌봄서비스 지원은커녕 방문마저 거부했다. 하지만 통합돌봄팀이 수차례 방문해 기초연금을 받도록 돕자 A씨는 외부에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통합돌봄팀은 A씨에게 도시락·영양보충식은 물론 방문 보건의료 서비스(진료, 간호, 영양), 주거환경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했다.
그 결과 A씨의 빈혈 수치와 영양지표는 개선돼 항암치료를 다시 받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A씨는 자택 현관문에 “변함없이 보내주시는 국과 반찬 등을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붙여 통합돌봄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진천군은 지난 2월 기준 전체 인구(8만6214명) 중 노인이 19.6%(1만6885명)에 달하는 고령사회이다.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이다. 군은 2019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역사회통합돌봄 사업에 참여했다.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가 골자다. 군은 매주 복지부서,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복지기관, 의료기관 등과 ‘통합지원회의’를 열고 어르신 개개인의 욕구에 맞춘 ‘통합지원체계’를 세워 보건의료, 일상생활 지원, 요양, 주거 서비스 등을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진천군은 ‘우리동네 거점돌봄센터’ 34곳을 중심으로 거동 불편 어르신이나 퇴원 환자 등에게 의료와 요양, 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방문형 복지모델을 구축한 상태다. 의료와 주거, 영양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 기관이 협력해 대상자의 욕구에 맞춘 서비스를 통합연계해 제공한다. 보건·의료기반이 취약한 농촌지역의 경우 재택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군은 진천읍 초평로 옛 농업개발원 부지(8014㎡)와 30여곳 마을(각 30∼100㎡)에 돌봄과 재활, 고용, 교육 등을 아우르는 통합노인돌봄시설 ‘케어팜(치유와 농장의 합성어)’을 운영 중이다. 케어팜은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 장애인, 아동 등이 농사를 지으며 돌봄과 정서적 안정 효과를 얻고 중증질환 등으로 악화하지 않게 하는 ‘예방적 돌봄’ 성격의 맞춤형 복지서비스다. 현재 연간 약 8000명이 케어팜을 이용한다. 케어팜에 참여한 60대 B씨는 “몸이 불편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 작물도 키우고 수확해 가지고 가니까 성취감이 있다”며 “돌봄을 받을 생각을 하다가 식물을 키우고 돌보면서 마음이 밝아지고 건강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진천군의 통합돌봄서비스는 단순히 복지서비스 제공을 뛰어넘는다. 초고령사회에 대응해 ‘독박 간병’, ‘간병지옥’을 뛰어넘는 대안 모델로 ‘생거진천형 복지 생태계’ 구축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진천 통합돌봄 현장을 7년째 누비고 있는 이재철 군 주민복지과 통합돌봄팀 주무관은 “사각지대 어르신 통합돌봄 퇴원 연계로 발굴하고 지속한 관리로 삶의 질과 건강이 실질적으로 향상된 사례가 많다”고 자신했다. 생거진천형 복지 생태계 지향점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이라는 얘기다. 이 주무관은 “통합돌봄 대상자 어르신들이 ‘자식들보다 군(지자체)이 낫다’는 말씀을 하실 때 돌봄은 더는 가족만의 몫이 아닌 지역과 사회가 함께 나눠야 할 공동의 책임이라고 느낀다”고 강조했다.

충북 제천시는 3년째 ‘제천형 경로당 점심제공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는 노인 일자리 창출과 노인 돌봄사업을 결합한 형태다. 끼니를 거르거나 외로움, 고독사, 무료함 등의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먹을거리·즐길거리·소일거리를 제공하는 복지사업이다. 매월 14만원의 급식비와 쌀을 지원하고 노인들과 친분 있는 61세 이상 주민 가운데 복지매니저를 선발한다. 복지매니저는 주 5일간 노인들의 점심을 마련하고 월 76만원을 받는다. 이 사업에는 경로당 268곳이 참여해 일평균 4622명이 이용한다. 만족도도 98%에 달한다. 한 경로당 회원은 “점심 한 끼가 어르신들의 건강을 살피고 지역주민에게 경제적 도움과 정을 쌓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남 담양군 ‘향촌복지’는 농촌의 지리적·사회적 특성을 반영한 복지체계로 꼽힌다. 복지관을 중심으로 노인복지, 건강관리, 여가활동 치매예방, 건강, 식생활 지원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통합돌봄 행복동행’과 공중보건의가 가정을 방문하는 ‘우리마을 주치의’ 등은 어르신들에게 인기다. 치매 예방 교실과 치매 조기 검진, 대상포진 무료 예방접종 확대 등 지역형 복지를 선보인다.

광주광역시는 2023년부터 ‘광주다움 통합돌봄’을 시행하고 있다. 민·관이 협력해 시민 누구나 돌봄이 필요할 때 소득과 재산, 연령, 장애, 재산 등과 관계없이 이용한다. 또 복잡한 서류나 절차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서비스를 신청한다.
강원 횡성군은 올해 ‘횡성형 노인 통합돌봄사업’을 확대 시행하고 있다. 횡성형 통합돌봄사업은 관내 65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방문진료와 식사배달, 주거환경개선, 안심돌봄, 고령 장애인 포함한 맞춤형 서비스 제공 등 10개 복지서비스를 통합 지원하는 사업이다. 역시 돌봄매니저를 둬서 의료 접근성과 안심돌봄 방역 등 복지전달체계를 강화한 게 특징이다.
자택에서 임종하는 노인이 전체의 15%에도 못 미치는 2025년 초고령사회인 한국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일단 노인들이 반평생 자기가 살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장희 충북도사회서비스원 원장은 “일부 지자체에서 통합돌봄과 간병공동체 사업을 시행하고 성과도 내고 있다”면서도 “현재 통합돌봄은 전달체계가 나뉘고 대상자도 상담과 욕구 조사, 신청서 등을 전달체계별로 따로 받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국가가 어르신 돌봄을 책임지는 시대가 된 만큼 대상자 욕구에 맞춘 통합적 판단과 유기적 서비스 연계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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