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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시대정신] 과잉 처벌, 과소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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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7 22:59:47 수정 : 2025-07-07 2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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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형이 기울어진 판결 많아
법이 정의롭다는 믿음 흔들려
가혹한 법은 법이 아니라 폭력
안이한 법, 범죄 방조자와 같아

방송인 이경규씨가 약물 운전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복용한 약은 공황장애 치료제였다. 사건이 보도되자 여론이 술렁였다. “의사의 처방을 받은 약도 위법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인지 저하 가능성을 알고도 운전했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 사건을 보며 과거 몇 가지 사례가 떠올랐다. 2023년 경기도 양주시의 한 식당이 유통기한을 하루 넘긴 막걸리를 팔았다는 이유로 234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업주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처벌이 지나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당시는 소비기한 전환 계도기간이었고, 제조사가 ‘유통기한 10일’이 아닌 ‘소비기한 14일’로 표기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이었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지난해에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거울에 붙은 전단지를 뗐다가 검찰에 송치됐다. 거울을 보기 위해 거울을 덮고 있던 전단지를 떼어낸 행위가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2010년에는 버스 기사가 요금 800원(400원씩 두 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법원도 사측의 조치를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사건들에는 공통된 여론이 뒤따랐다. 법의 기준이 모호하고 처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 사례들만 보면 대한민국은 무시무시한 ‘엄벌주의’ 국가로 보인다.

‘엄벌주의’의 대표격으로 자주 거론되는 나라는 싱가포르다. 지정된 장소 외 흡연 시 20만원,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면 50만원, 거리에 침을 뱉으면 100만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된다. 과거 지하철 자동문 센서에 껌이 붙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일이 반복되자 아예 껌 금지 국가가 됐다. 껌을 몰래 반입하거나 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상당의 벌금형에 처한다. 중범죄에 대해서는 훨씬 더 엄격하다. 마약 밀매, 성폭행, 공공기물 파손 등의 범죄에는 태형이 선고되는데 그 고통과 공포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알려져 있다. 숙련된 집행인이 휘두르는 매를 맨살에 맞으면 피부가 찢어지고 출혈이 발생하며 쇼크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미국, 일본과 함께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다.

싱가포르의 ‘엄벌주의’가 적절한 범죄 억제 수단인지 혹은 형벌권의 남용인지는 논쟁적인 주제이지만, 적어도 일관성은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한국법제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국민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80%가 우리나라의 처벌 수준이 약하다고 답했다. 성별, 연령, 학력, 소득, 지역에 따른 차이도 없었다. 이처럼 전 국민이 한목소리를 낸 사안도 드물다. 이는 잔혹한 아동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겨우 12년형을 받고 출소한 조두순 사건 등에서 비롯된 분노와 무력감의 반영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막걸리, 전단지, 잔돈 800원―에 대한 처벌이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건, 중대한 범죄 앞에서 유독 관대했던 대한민국 법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사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피하기 어렵다. 전세 사기로 고통받는 청년들, 보이스피싱에 절망하는 노인들, 가상화폐 등 신종 사기로 삶이 무너진 이들이 늘고 있지만 검거율은 낮고 처벌은 솜방망이다. 사기는 피해자를 가족 붕괴와 자살에까지 내모는 악질 범죄다. 그러나 그 형량은 턱없이 낮고 피해 금액의 회수율 또한 극히 저조하다. 사기로 막대한 돈을 빼돌려도 몇 년 복역으로 끝나면 범죄자는 더 대담해진다. 실제로 한탕을 노리다 덜미를 잡힌 사기범들의 재범률은 다른 범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이뿐인가. 폭행, 협박, 스토킹 등 증오나 집착이 얽힌 범죄에 법의 대응이 미약하면 피해자는 되레 보복을 두려워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거나 법원이 이를 기각해 결국 피해자가 목숨을 잃는 스토킹 사건이 반복돼 왔다. “또 막지 못한 스토킹 살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해마다 데자뷔처럼 등장한다. 지난주 구속기소된 대구 스토킹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끔찍한 사례다. 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던 중 아파트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피해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형량이 낮다 보니 복역 중인 가해자가 출소 후 복수를 예고하는 일도 벌어진다.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숨고 도망쳐야 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강자에겐 너그럽고 약자에겐 날을 세우는 법, 중대한 범죄에는 물러서고 사소한 위반에는 과잉대응하는 법은 결국 스스로 권위를 갉아먹는다. 법이 무너진 자리에는 분노가 질서를 대신하고 혐오가 정의를 자처한다. 언젠가부터 특정인의 신상을 소셜미디어 등에 박제하는 ‘사적 제재’가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법적 처벌이 충분치 않다면 사회적 처벌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우리가 법치, 즉 법에 의한 다스림에 동의한 것은 법이 정의로우며 공평하리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나 자꾸만 기울어지는 죄와 형의 저울을 보며 그 믿음이 흔들린다. 가혹한 법은 법이 아니라 폭력이다. 반면 안이한 법은 범죄의 방조자와 다를 바 없다.

 

김동기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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