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테이커/ 네이트 실버/ 김고명 옮김/ 더퀘스트/ 3만8500원
“인간의 땀이 아니라 기계의 연산으로 주조되는 세상에서는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자들이 최강의 카드를 쥐고 있다.”

데이터란 완벽하지 않으며 ‘소음’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베스트셀러 ‘신호와 소음’ 저자가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통계학자이자 데이터 분석가, 정치 예측 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 창업자로 유명한 저자는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인 프로 도박사의 시선으로 ‘전문적 위험감수자’들의 세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다. 특유의 예리한 분석력으로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핵심 인물들을 ‘강(river)’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포커 플레이어, 헤지펀드 매니저, 암호화폐 투자자, 블루칩 아트 수집가로 대표되는 ‘강사람’들은 고도의 전략적 위험 감수를 통해 금융과 기술, 정치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이들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댓값’과 게임이론에 기반해 끊임없이 우위를 확보하려 한다.
국내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프로 도박과 스포츠베팅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한 전반부를 지나면 실리콘밸리의 숨겨진 진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털과, 그들을 맹렬히 비판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을 걷는 이들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예측 불가능한 기술의 영역을 베팅 대상으로 삼는 이들의 태도는 미국과 다른 나라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265억 달러의 자산가에서 수감 직전으로 추락한 샘 뱅크먼프리드를 중심으로 암호화폐와 벤처캐피털,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현대적 개념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의 전략과 사고방식이 언제 성공으로 이어지고, 언제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버는 또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등 이른바 ‘기술낙관주의자들’의 위험감수 성향이 미래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정부가 주도한 맨해튼계획과 달리 AI의 미답지로 돌진하는 움직임의 선봉에는 위험과 보상에 관한 강사람의 관점으로 무장한 실리콘밸리의 기술낙관주의자들이 있다.”
핵심은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우리가 갖춰야 할 세 가지 근본 원칙, 즉 주체성·다수성·상호성이다. 주체성은 개인이 타인의 판단이나 기존 권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와 관점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다. 다수성은 다양한 목소리와 집단의 지혜가 모였을 때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상호성은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동체 안에서의 신뢰와 협력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든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열쇠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 3대 원칙이 지금처럼 우리 문명이 위험에 처한 시기를,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삶을 판돈으로 걸어버린 이 ‘게임’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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