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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밀실에서의 살인 [유선아의 취미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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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3 22:59:23 수정 : 2025-07-03 23: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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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멕시코시티, 미국인 작가 윌리엄 리(다니엘 크레이그)는 술집을 전전하며 공허를 채울 상대를 찾아다닌다. 어느 밤거리를 지나는 청년 유진 앨러턴(드루 스타키)을 발견하고 리는 그에게 온통 마음이 사로잡힌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퀴어’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거의 모든 환상을 실현한다. 속을 뒤집어서라도 진심을 보이고 싶은 상상은 ‘퀴어’에서 심장이라도 꺼내어 마음 저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장면으로 드러난다. 감히 닿지 못할 이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은 영혼의 손길로, 언어를 초월한 대화는 육신마저 지워버린 영혼의 투명함으로 그려진다.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총 세 개 챕터와 하나의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부분은 세 번째 챕터인 ‘정글의 식물학자’와 에필로그에 있다.

 

리는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신비의 약초 야헤를 찾아 유진과 함께 에콰도르의 정글로 향한다. 그곳에 사는 기이한 식물학자 코터 박사가 어쩌면 리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야헤차를 달여 마시고 의식을 치른 리와 유진은 그날 밤 언어 없이 대화를 나누고 독립된 두 육체는 하나의 태반 속의 두 태아처럼 합쳐진다. 여기서 리와 유진은 독립된 타자의 화합과 완성에 이르는 듯 보이나 곧 무산되고 만다. 코터 박사는 리와 유진에게 이틀 더 머무르며 열린 문 너머로 무엇이 있는지 더 들여다볼 것을 권하지만 유진의 본심을 가장 알고 싶어했던 리가 돌연 이 제안을 외면하고 정글을 떠나기로 선택한다. 두 영혼 사이를 오갈 수 있게 한 사랑의 신비는 ‘열린 문’에 비유되었기에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호텔 방은 유진을 그리워하는 리가 만들어낸 밀실이다.

리는 존재하는 이를 사랑하기보다는 부재한 이를 그리워하기로 결심한 자다. 그가 방에 들어서면 꼬리를 입에 문 뱀 우로보로스가 무한대의 기호로 누워 눈물을 떨군다. 살갗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잃어버린 타자는 환상 속에서 영생할 수 있다. 무한대의 우로보로스가 예언하듯 리는 기꺼이 그리움을 욕망하는 자리에 선다. 그 낭만적 밀실 안에서 그는 유진을 수천 번 죽였다가 다시 살려냈을 것이다.

 

마지막에 노쇠한 리의 모습은 은유적 장면이다. 어느 이야기에서든 남겨져 기다리는 자는 쉽게 늙어버리고 환상 속에서 부재한 연인은 나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리에게서 영원히 재생되는 그리움은 유진의 죽음만으로는 멈출 수 없다. 끝없는 결핍과 부재의 고통을 더 감내할 수 없다면 이제 타자 아닌 그 자신, 리가 죽어야 한다. 사랑의 확언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다. 리가 맞이한 죽음은 사랑의 종언일까, 아니면 환상의 종언일까.

 

유선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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