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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전에서 형제를 구한 어머니에게 바치는 와인 ‘보디가드’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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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4 06:00:00 수정 : 2025-07-03 15: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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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내전 초기 집에 떨어진 로켓포탄으로 어린 형제 큰 부상/어머니 도움으로 파리 망명 ‘와인의 꿈’ 키워/공대 출신 형제 창고서 시작한 IT 스타트업 ‘대박’/기업 팔아 파소 로블스에 와이너리 설립/20년만 캘리포니아 ‘부띠끄 와이너리’로 성장

 

다우 보디가드 샤르도네. 최현태 기자

본격적인 레바논 내전이 시작되기 직전인 1973년 5월 3일 아침. 베이루트의 평화로운 한 가족의 집 마당에 로켓 폭탄이 떨어지고 맙니다. 폭탄으로 집은 완파됐고 당시 12세이던 조르주 다우(Georges Daou)는 포탄의 파편이 폐와 간에 박혀 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8세이던 동생 다니엘 다우(Daniel Dauo)도 얼굴의 신경 일부가 끊어지는 중상을 당합니다.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형제를 구한 이는 바로 어머니 마리(Marie). 프랑스 시민권자이던 어머니 덕분에 형제는 프랑스로 망명할 수 있었고 목숨을 구한 형제는 성장해 와이너리를 설립합니다. 형제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기울여 만든 와인에 붙인 이름은 ‘보디가드(Bodyguard)’. 전쟁의 역경 속에서 형제를 구하고 지킨 어머니의 강인한 정신과 사랑에 헌정하는 다우 빈야드(Daou Vinyards) 와인입니다.

 

조셉과 마리 다우. 홈페이지
다우 형제. 홈페이지

◆내전에서 살아남아 와이너리 일궈

 

1975~1990년 집중적으로 벌어진 레바논 내전(Lebanese Civil War)은 단순한 종교 분쟁을 넘어서 현대 중동사의 가장 혼란스럽고 장기화된 전쟁 중 하나로 꼽힙니다. 종파, 정치, 지역,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발생한 복합적 내전입니다. 기독교 vs 무슬림, 좌익 vs 우익, 팔레스타인 vs 레바논인으로 전선이 형성됐고 시리아·이스라엘·이란까지 개입하면서 많은 목숨을 앗아갔는데 무려 12만~15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형 조르주는 유명와인매체 와인앤수지애스트와 인터뷰에서 “아이로 잠들었지만, 어른으로 깨어났다.(I went to bed as a child, but I awoke as a man.)”고 털어 놓을 정도로 로켓 폭격 당시의 충격과 성장의 무게를 회상합니다. 프랑스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형제는 미국 샌디에이고 대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형제는 졸업 후 작은 창고에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을 창업, 병원에 전산 시스템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려 큰 부를 쌓게 됩니다.

 

다니엘 다우. 홈페이지

형제가 선택한 다음 사업은 바로 와인. 레바논에서 피신해 프랑스에서 살던 시절, 아버지 조셉(Joseph)은 가끔 와인을 오픈해 형제가 한 모금씩을 맛을 보도록 했는데 동생 다니엘은 그때 와인에 매료되고 맙니다. 이에 아버지와 추억을 가슴에 새기며 언젠가는 와이너리를 세우겠다는 꿈을 키웁니다. IT 사업을 하면서 와인 양조 공부를 병행하던 다니엘은 결국 형을 설득해 IT 기업을 무려 7500억원에 매각하고 이 돈을 모두 투자해 와이너리를 일굽니다. 불과 조르주가 서른다섯, 다니엘이 서른한살 때입니다.

 

파소 로블스 위치.
애들레이다 디스트릭트 위치. 홈페이지
다우 포도밭 점토질 석회 토양.  홈페이지

공대 출신답게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7년동안 최고의 포도밭 부지를 물색하던 형제가 마침내 찾아낸 땅은 캘리포니아 중부해안 와인 산지 파소 로블스(Paso Robles) 서쪽 애들레이다(Adelaida)의 해발고도 670m의 산봉우리. 당시 이 땅은 황무지였습니다. 하지만 토양은 생테밀리옹 등 보르도 우안(Right Bank)을 떠올리게 하는 점토질 석회 토양이라 카베르네 소비뇽 등 보르도 품종을 재배하기에 가장 적합한 토양으로 판단됐습니다. 기후도 해안과 가까워 나파밸리보다 훨씬 서늘했습니다. 이에 형제는 나파밸리를 뛰어넘는 최고의 와인을 빚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2007년 땅을 사들여 카베르네 소비뇽 보르도 클론을 심어 포도밭을 일굽니다. 형제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불과 20년도 안 돼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나파밸리 부띠끄 와인을 뛰어넘는 유일무이한 와인”으로 극찬할 정도로 다우 빈야드 와인은 파소 로블스를 뛰어넘어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부띠끄 와인’ 반열에 오릅니다.

 

다우 포도밭 전경. 홈페이지
TWE 총괄 사장 네보사 루키치(Nebojsa Lukic). 최현태 기자

◆파소 로블스 와인의 성공을 이끌다

 

다우 빈야드는 얼마전 ‘호주 국가대표 와인’ 펜폴즈를 소유한 트레저리 와인에스테이트(TWE)에 팔렸는데 매각 대금은 무려 1조원이랍니다. 한국을 찾은 TWE의 럭셔리 영업 및 마케팅 총괄 사장 네보사 루키치(Nebojsa Lukic)를 만났습니다. 다우 빈야드 와인은 빈티지 코리아에서 2024년부터 수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와이너리를 세우겠다고 하자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 다 뜯어 말렸어요. 와인을 만든 경험이 없었기에 투자금을 몽땅 날릴 것을 우려했죠. 형 조르주도 반대했을 정도에요. 더구나 다니엘 선택한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이었죠. 다우 형제가 파소 로블스 땅을 사들일 때만해도 이 곳 생산자의 60% 이상은 진판델(Zinfandel)과 그르나슈, 시라로 프랑스 론 스타일 와인을 만들던 시절이고 나파밸리 같은 고급 까베르네소비뇽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다니엘의 시도는 무모하다고 여겨졌답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지나서보니 그의 선택이 맞았어요. 지금은 파소 로블스 포도밭의 57%가 카베르네 소비뇽이랍니다.”

 

다우 와이너리 전경. 홈페이지
다우 급경사 포도밭.  홈페이지

다니엘은 프랑스 보르도와 나파밸리에서 가져온 최고급 까베르네 소비뇽 클론 14종을 최대 56% 경사의 가파른 구릉에 에이커당 3630주까지 심는 고밀도 재배를 시도합니다. 포도나무를 빽빽하게 심으면 생존을 위해 뿌리가 깊숙하게 뻗어나가 다양한 지층의 성분으로 포도송이에 끌어 올립니다. 다니엘은 여기에 공대 출신답게 과학적인 기법으로 페놀 성분까지 완벽하게 익을 때 수확해 집중도, 향, 숙성잠재력이 탁월하고 매끄러운 질감을 구현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페놀 수치가 높을수록 탄닌 구조도 좋아 장기 숙성 능력이 뛰어난 와인이 탄생합니다.

 

다우 페놀 측정. 홈페이지
다우 포도밭에서 배양한 자연 효모. 홈페이지

다니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포도밭 채취한 수백 종의 야생 효모를 연구해, 고온 발효 환경에서도 색 안정성과 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특별한 균주를 찾아냅니다. 이 효모는 현재 전 세계 30개국 이상의 와인 메이커들이 사용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 포도즙은 압착하지 않고 포도 무게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최상급 포도즙인 프리런 주스만 사용합니다.

 

‘높은 파도는 모든 배를 띄운다’는 신념을 지닌 다니엘은 파소 로블스 전체 생산자들의 와인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벗고 나섰고 ‘파소 로블스 카베르네소비뇽 생산자협회(Paso Robles CAB Collective)’도 창립합니다. 다니엘은 다른 생산자들과 함께 와인 양조 지식, 철학, 기술을 공유하며 파소 로블스를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이끌고 있습니다.

 

TWE 총괄 사장 네보사 루키치(Nebojsa Lukic). 최현태 기자
다우 소울 오브 어 라이언. 최현태 기자

◆아버지 기리는 소울 오브 라이언

 

다우가 이렇게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빚는 시그니처 와인은 소울 오브 어 라이언(Soul of a Lion)입니다. 이 와인 첫빈티지는 로버트 파커가 운영하는 와인 애드보케이트로부터 96점을 받았는데 이는 나파밸리를 제외한 곳에서 까베르네 소비뇽이 받은 가장 높은 점수입니다. 이 와인은 매년 세계에서 가장 페놀 수치가 높은 까베르네 소비뇽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네랄이 풍부한 라임스톤 토양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 81%, 카베르네 프랑 13%, 쁘띠 베르도 6%를 섞은 보르도 블렌딩입니다. 눈 감고 마시면 부르고뉴 샹볼 뮈지니로 착각할 정도로 피노누아 같은 우아한 향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와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온도가 조금 오르면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와인의 왕’ 바롤로를 닮은 묵직한 구조감도 잘 느껴집니다. 잘 익은 블랙체리, 블랙베리로 시작해 잔을 흔들면 가죽, 시가, 젖은 흙, 숲속향, 버섯, 다크 초콜릿 등 10년 이상 숙성된 와인에 느껴지는 3차향들이 끝도 없이 펼쳐집니다. 치즈 플래터, 크레페 등 디저트와도 잘 어울립니다.

 

다우 소울 오브 어 라이온. 최현태 기자

비비노에서 평점 4.6점을 받았고 와인을 마신 이들은 “풍부한 베리류 소스 풍미에 짙은 코코아 더스트가 느껴지며 가벼운 민트향, 토스트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엄청나게 풍부하고 우아하며 밸런스를 갖췄고 복합미가 넘친다. 바디감이 풍부하고 부드럽다”고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다니엘은 이 와인을 위해 부아 로제(bois rosé)로 불리는 희귀한 분홍빛 프랑스산 고급 오크를 사용합니다. 5년동안 자연 건조시킨 오크로 제작한 뒤 다니엘이 자신만의 특별한 토스팅 방식을 적용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와인의 피니시에 깊이와 섬세함을 더하고, 과도한 오크향 없이 복합적인 풍미를 이끌어냅니다.

 

다우 소울 오브 어 라이온.

와인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소울 오브 어 라이온’은 조르주와 다니엘이 돌아가신 아버지 조셉(Joseph)을 기리며 헌정한 와인입니다. 형제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가족의 역사를 담기 위해 전기 작가를 모셔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도록 합니다. 책이 완성된 뒤 작가가 조셉에게 책의 제목을 묻자 조셉은 주저 없이 “소울 오브 어 라이온(Soul of a Lion)”이라고 대답합니다. 이유를 묻자 “내가 배운 것과 자식들에게 가르친 것은, 인생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일어나 사자의 영혼으로 포효하며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정신”이라고 답합니다. 이에 형제는 아버지의 희로애락, 정신, 열정, 용기, 사랑, 지혜를 담아 아버지를 기리는 와인에 ‘소울 오브 어 라이온’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다우 보디가드 샤르도네.  최현태 기자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보디가드

 

다우 형제는 어머니 마리(Marie)에게 바치는 헌정 와인 보디가드 화이트와 레드 두 종을 생산합니다. 다우 보디가드 샤도네이는 신선한 레몬제스트, 복숭아에서 메론, 파인애플, 망고 등 열대과일까지 다양한 과일향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자스민향도 스쳐 지나갑니다. 온도가 오르면 버터리한 오크향과 스파이시한 노트가 살짝 더해집니다. 생기발랄한 산도가 뒤에서 잘 받쳐줘 좋은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새우, 해산물 요리, 파스타, 치즈와 잘 어울립니다. 새 프렌치 오크 30%, 새 미국 오크 30%, 뉴트럴 프렌치 오크 40%에서 10개월 숙성해 복합미와 볼륨감을 잘 이끌어 냈습니다.

 

다우 보디가드 레드

다우 보디가드 레드는 쁘띠 베르도 71%, 쁘띠 시라 29%를 섞은 아주 독특한 블렌딩입니다. 레드체리, 블랙베리, 크렌베리, 자두로 시작해 농축된 검은 과일향이 더해지고 으깬 베리, 딸기잼, 메이플시럽, 담배, 초콜릿이 과하지 않게 어우러집니다. 시간이 지나면 허브와 후추향이 더해져 긴 여운을 남깁니다. 실크처럼 부드러운 탄닌이 돋보입니다. 송아지, 양고기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새 프렌치 오크 35%, 새 미국 오크 뉴 아메리칸 오크 35%, 뉴트럴 프렌치 오크 30%에서 18개월 숙성합니다.

 

다우 로제

◆프로방스 스타일 로제와 소비뇽 블랑

 

수입사 빈티지 코리아는 올해 프랑스 프로방스 스타일 로제와 소비뇽블랑으로 와인 리스트를 확대했습니다. 다우 로제는 그르나슈 100%입니다. 레몬, 감귤 제스트, 사과, 복숭아, 살구, 체리로 시작해 망고, 파파야, 멜론 등 열대 과일향이 더해지고 히비스커스와 허니서클(인동초꽃)의 은은한 플로럴향, 미네랄이 어우러집니다. 온도가 오르면서 바닐라 힌트도 느껴집니다.

 

다우 소비뇽블랑.

다우 소비뇽 블랑은 레몬, 그린 애플, 패션푸르트, 키위로 시작해 잘 익은 배, 자몽, 모과와 은은한 꽃향이 더해집니다. 소비뇽 블랑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젊은 층에 가장 인기는 화이트 품종입니다. 파소 로블스에서 생산되는 소비뇽 블랑은 뉴질랜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과 스타일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클래식한 말보로 소비뇽블랑은 강렬한 구즈베리와 레몬 그라스 등 가볍과 상쾌하며 매우 높고 날카로운 산도가 도드라집니다. 반면 파소 로블스 소비뇽블랑은 배, 복숭아에서 자몽, 멜론 등 잘 익은 과일 캐릭터가 더 풍성하며 산미는 보다 둥글고 부드러운 스타일입니다.

 

다우 패트리모니

◆나파밸리 뛰어넘는 부띠끄 패트리모니

 

패트리모니(Patrimony)는 다우의 최상급 플래그십 와인 시리즈입니다. 패트리모니는 태평양과 가깝고 해발고도 600m가 넘는 애들레이다(Adelaida)의 포도로만 만듭니다. 파소 로블스는 11개 세부지역으로 구성됐는데 아델라이다는 파소 로블스의 다른 지역에 비해 서늘합니다. 태평양과 가깝고 일교차도 커 미네랄과 산도가 훌륭하며 짭조름한 미네랄과 복합미도 잘 표현됩니다.

 

패트리모니 카베르네 소비뇽은 카시스, 블루베리, 석류, 커런트, 보라색꽃으로 시작해 온도가 오르면 구운 호도 등 견과류와 흑연, 에스프레소, 담배, 초콜릿, 토스트, 모카의 힌트가 풍성하게 어우러집니다. 붉은 육류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패트리모니 카베르네 프랑은 블랙체리, 블랙베리, 자두, 석류, 라즈베리의 노트가 느껴지고 으깬 돌이 연상되는 미네랄 노트가 도드라집니다. 탄닌은 벨벳처럼 부드럽네요. 시간이 지날수록 겹겹이 쌓인 과일향이 하나하나 펼쳐지고 살짝 스파이시한 느낌이 길게 이어집니다.

 

파소 로블스 AVA.  파소로블스와인협회

◆파소 로블스 와인 역사

 

파소 로블스(Paso Robles)는 샌프란시코와 로스엔젤레스 중간쯤에 있습니다. 미국 와인은 나파밸리 정도만 알고 있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파소 로블스는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파소 로블스는 스페인어로 ‘오크의 길’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이곳에 오크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아주 오래전부터 와인 산업이 발전했습니다. 파소 로블스는 18세기 후반 스페인 선교사들이 포도나무를 심으면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답니다. 미국 포도재배 및 와인생산 규정 AVA(American Vitcultural Areas)가 도입된 1983년 나파밸리, 소노마와 AVA에 선정됐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품질을 인정받았습니다. 2014년 최종 승인된 파소 로블스 세부 산지는 11개입니다. 하지만 세부 산지가 있어도 파소 로블스 명칭을 알리기 위해 와인 레이블에 파소 로블스를 세부 산지와 함께 표기합니다.

 

파소 로블스 AVA.

◆파소 로블스 토양

 

동~서 67km, 남~북 56km에 달하는 파소 로블스는 태평양판이지만 북쪽의 나파밸리와 소노마는 북미판으로 지각 판 자체가 굉장히 다릅니다. 따라서 파소 로블스만의 특별한 기후와 토양 조건을 지녔는데 수백만년동안 조개껍데기, 해조류, 산호 등이 층층이 쌓인 깊은 해저지반이 융기한 백악질 쵸크(Chalk) 토양과 석회암인 라임스톤 토양이 주를 이룹니다. 샴페인 본고장인 프랑스 상파뉴가 바로 이런 쵸크 토양으로 유명합니다. 쵸크 토양은 포도가 우아한 산도를 얻는 가장 뛰어난 토양입니다. 파소 로블스는 물 공급을 거의 하지 않는 드라이 파밍(건지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지만 쵸크 토양 덕분에 생장에 필요한 충분한 수분이 공급됩니다. 쵸크 토양은 약간 축축할 정도로 습기를 잘 머금어 매우 건조한 여름에도 포도나무에 적당한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또 쵸크토양은 포도나무 뿌리가 땅 속으로 깊숙하게 파고들기 쉬워 우아한 산도와 미네랄을 움켜쥐면서 와인에 섬세하고 우아한 풍미와 뛰어난 구조감을 선사합니다.

 

파소 로블스 토양. 다우 홈페이지.

파소 로블스에는 30개 이상의 ‘부모 토양’이 있을 정도로 토양이 다양한데 크게 구분하면 4가지 타입입니다. 가장 기본 토양이 백악질과 석회질로 고대 해저지대가 융기하면서 생긴 토양입니다. 특히 파소 로블스 서쪽은 표층토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석회질로 이뤄졌습니다. 고도가 높아지면 석회질 함량이 좀 더 많아집니다. 해발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구릉지의 발치에선 좀 더 유기질이 많이 섞여 있는 점토질이나, 미사점토가 많이 발견됩니다. 구릉지가 많은 동쪽은 점토질이 메인토양이며 표층토에서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칼슘을 많이 함유한 석회질 토양도 볼 수 있습니다.

 

파소 로블스 포도밭. 

◆피소 로블스 기후

 

파소 로블스는 서쪽 산타 루시아 산맥(Santa Lucia Range)과 동쪽 쇼람 힐스(Cholame Hills)·라 판자 산맥(La Panza Range)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지형으로 낮에는 포도가 잘 익지만 밤에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큰 일교차(15~25도) 덕분에 당도와 산도의 밸런스가 좋은 포도가 생산됩니다. 산타 루시아 산맥의 템플턴 골짜기 사이로 태평양의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템플턴 갭 효과(Templeton Gap Effect)’ 덕분입니다. 또 동쪽 산맥에서도 냉각 효과를 주는 다운 슬로프 윈드가 불어와 여름에도 아침에 해가 뜨기 전까지 서늘한 기후가 오래 유지되고 북쪽에서도 서늘한 바람이 살리나스 밸리까지 내려옵니다. 이 때문에 공기 순환도 잘 됩니다. 실제 따뜻한 포도 생장기 동안에 거의 매일 오후 2시쯤 찬공기와 더운 공기가 순환되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포도밭에서 서 있으면 머리카락이 공기 때문에 계속 밀려 올라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파소 로블스 와인 산업 현황과 해발고도. 와인폴리

◆파소 로블스 와인 매력과 품종

 

파소 로블스 와인은 가성비가 뛰어나고 다양한 품종을 잘 만든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파소 로블스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구대륙 와인산지의 토양, 기후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르도 대표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무르베드르, 쁘띠베르도는 물론, 부르고뉴를 상징하는 샤르도네도 잘 자랍니다. 특히 프랑스 론밸리의 레드 품종인 시라, 그르나슈와 화이트 품종 비오니에, 마르산, 루산이 유명하고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네비올로, 바르베라도 뛰어납니다. 이처럼 파소 로블스 한 곳에서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대표 품종을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아주 큰 매력입니다. 여기에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진판델이 더해지고 가격까지 착해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답니다. 보통 와인산지를 포도 품종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파소 로블스는 이처럼 다양한 품종을 잘 만들어내는 곳이라는 점에서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르도네 일변도인 나파밸리에서 찾을 수 없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프로바인(ProWein), 이탈리아 빈이탈리(Vinitaly) 등 다양한 국내외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그리스,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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