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성 배제하고 전문성·합리성 기준 돼야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정철학과 효율적 정부 운영의 구현 수단으로 조직 개편을 활용하곤 한다. 문제 진단에 따라 조직 설계에 초점을 두는 하드웨어적 조직 개편에 그칠 수도 있고,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 문화 등 운영에 초점을 두는 소프트웨어적 개혁을 내세울 수도 있으며, 목적에 따라 다양한 조합도 가능하다.
국정기획위원회가 정부조직개편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국정기획위에 따르면 정부 조직 개편의 목표는 과도하게 집중된 기능과 권한의 분산·재배치라고 한다. 특히 기획재정부와 검찰의 역할 조정이 개편의 핵심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의 조직 개편을 돌이켜볼 때 여전히 아쉬운 점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추진되었던 조직 개편의 목적과 기대 효과가 실현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정부의 국정 수행에 부담과 문제를 초래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다. 특히 조직 개편의 효과와 문제점에 대한 학계나 정부의 체계적인 분석이 미흡한 상황에서 정권교체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조직 개편의 논의가 또 하나의 역사 반복은 아닐지 염려스럽기도 하다.
기획예산과 재정은 여러 번 분리와 통합을 겪었고, 무역과 통상 기능도 여러 부처를 전전했음을 기억한다. 정부가 바뀌자마자 사라진 단명 부처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 대한 엄밀한 평가가 진행되었고, 후속 정부의 조직 개편 논의에 합리적 근거로 활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조직 개편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실타래를 푸는 일이 현실적으로 더 어렵다. 기관의 분리나 통합으로 새롭게 이동하는 공직자들의 업무 이해도의 한계, 전문성과 정체성 저하, 대국민 행정서비스 품질의 저하 등과 같이 종종 제기되는 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시작된 조직 개편 작업이라면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몇 가지 점을 짚어보길 바란다.
먼저, 개편을 가능한 한 최소 범위로 한정하자. 새 정부의 국정철학은 광범위한 조직 설계보다는 관리와 운영에 대한 혁신을 통해 실질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로 조직 개편은 특정 부처의 분리나 통합 논의 이전에 급변하는 환경과 행정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 정부의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 조정 관점에서 거시적인 밑그림을 먼저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로 조직 개편은 흔히 합리적 분석으로 시작하여 정치적 타협으로 마무리되곤 한다. 가능한 한 정치성을 배제하고 전문성과 합리성에 따라 접근해야 그 목적을 훼손하지 않고 다음 정부에서 번복되는 우를 줄일 수 있다. 끝으로 답이 정해진 조직 개편은 발목을 잡게 된다. 큰 틀은 유지하더라도 정책 시뮬레이션을 통해 내용 수정이 가능한 융통성이 필요하다. 특히 제한된 시간이지만 가능하다면 개편 대상 체계의 문제점과 한계 등의 분석을 토대로 조직 개편의 필요성, 목적과 취지를 분명히 국민에게 제시하여 공감을 얻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듯이 조직 개편도 예외가 아니다. 부처 권한과 기능의 인위적 분리나 통합은 상대적으로 쉽다. 조직 개편의 성공 여부는 그 이후 효율적인 정책 조정, 통합과 집행이 선순환적으로 작동하여 기대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있다. 주요 선진국이 구조개혁을 최소화하고 운영과 관리를 통한 혁신에 더 신경 쓴 이유이다. 자칫 실험적 시도의 기회비용을 국민이 떠안지 않도록 창의성을 발휘하여 세심히 살펴주길 바란다.
오철호 숭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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