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트루먼 대통령 신속 참전 결정
“재임 중 가장 무거운 결단이라 말씀
오늘날 한국 보셨다면 감격하실 것”
혈육 첫 다부동기념관 조부 동상 찾아
6·25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던 한국군과 미군이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를 기념하는 다부동전적기념관에 25일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신사가 들어섰다. 기념관을 둘러보던 노신사의 발걸음은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 앞에서 멈췄다. 노신사는 우두커니 동상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듯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트루먼 전 대통령 동상을 바라보던 노신사는 그의 외손자인 클리프턴 트루먼 대니얼(67·사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침공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한국을 커다란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 같은 위기의 순간에서 전격적으로 투입된 유엔군은 한국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줬다.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도록 이끈 이가 트루먼 전 대통령이다.

그는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전쟁 중에 친구를 버릴 수는 없다’며 미군 참전을 즉각 결정했다. 당시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시간으로 1950년 6월24일 밤 북한군의 남침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한국군에 장비를 지원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어 공군 투입과 지상 전투부대 파병 지시도 내렸다. 트루먼 전 대통령의 신속한 참전 결정은 국가 최고지도자의 판단이 전쟁 판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공로를 기리기 위해 다부동전적기념관에 트루먼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 동상이 정전협정 제70주년인 2023년 7월27일 제막됐다. 동상이 조성된 후 트루먼 대통령의 혈육이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다.
대니얼은 6·25전쟁 당시 조부의 결정은 확고한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유엔군 참전국 지도자가 6·25전쟁에서 빠지자고 했을 때도 트루먼 전 대통령은 ‘전쟁 중에 친구를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며 “할아버지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후회하거나 번복하려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루먼 전 대통령을 ‘책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였다고 기억하는 대니얼은 “할아버지는 평생 독서를 하신 분”이라며 “내가 4살, 동생이 2살일 때 TV를 보고 있는 우리를 보시곤 책을 읽게 하셨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한 그리스 역사책이었다”면서 “40대가 되어 다시 읽어봐도 어렵더라”라고 말했다.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가족과 함께 방한한 대니얼은 지난 24일에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이 ‘이승만과 트루먼의 결단’을 주제로 재개관한 6·25전쟁 지도자실을 둘러봤다.
전시실 앞에는 재개관을 축하하는 이재명 대통령 명의의 화환이 놓여 있었다. 그는 축사에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 재임 중 가장 무거운 결단이었다고 말씀하셨다”며 “이 자리에 할아버지가 함께하셨다면 민주주의와 자유, 협력과 진보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 분들과 함께한 이 순간을 큰 영광으로 여기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할아버지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보셨다면, 깊은 감격을 느끼셨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한국이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나라로서 유엔의 평화유지와 인도적 활동에 기여하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언론인 경력을 가진 대니얼은 1995년 할아버지에 관한 회고록을 펴내는 등 트루먼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념하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 결정을 내린 트루먼 전 대통령의 외손자이면서도 핵무기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2016년에도 한국을 찾은 바 있는 대니얼은 이번에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경희대에서 강연하고, 북한과 가까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는 등의 일정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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