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휴전 이끈 직후 참석 의기양양
왕실 관저숙소 마련 등 이례적 환대
회원국 GDP 5% 국방비 증액 공식 합의
개별 국가 트럼프 비위 맞추기 나서
獨 “2029년까지 국방비 2025년의 2배로”
英 “미국산 스텔스기 12대 구매할 것”
트럼프 ‘나토 방위 조약 5조’ 확약 안해
나토 정상들 “해석 대상 아니다” 강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더 강력해진 ‘미국 중심주의’를 앞세우며 2기 임기를 시작한 뒤 첫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2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이란 간 12일 전쟁을 휴전으로 이끈 직후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환영 만찬에 참석했고, 대서양 건너 유럽 회원국들은 가공할 만한 군사력 우위를 보여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이 주최한 환영 만찬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는 지난 10년간 방위비에 추가로 1조달러(약 1363조원)를 투입했다”며 “이는 친애하는 도널드 대통령님, 당신이 우리를 독려해준 덕분”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부터 동맹국들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해온 것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 띄우기’에 나선 것이다.

나토는 이번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를 왕실 관저인 하우스텐보스궁에 마련하는 등 이례적 환대를 준비하는 한편 25일 모든 회원국의 국방비를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에 공식 합의했다.
미국이 나토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 뤼터 사무총장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용비어천가’를 연상케 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진정으로 특별하고 그 누구도 감히 엄두 내지 못했을, 이란에서의 단호한 조치(decisive action)를 축하하며 감사 드린다. 그것은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며 “당신은 우리를 미국과 유럽, 그리고 전 세계를 위해 정말 중요한 순간으로 이끌었다. 당신은 수십 년간 그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한 업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문자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그대로 올리면서 공개됐다. 뤼터 사무총장은 이후 ‘사적인 문자 내용이 공유됐는데 난처하지 않으냐’는 기자들 질문에 “전혀 문제 없다”고 답했다.

미국을 제외한 31개 회원국들은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트럼프 환심 사기에 나섰다. 독일 연방정부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2029년까지 국방비를 올해의 배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이 포함된 올해 예산안과 중기 재정계획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올해 2.4%에서 2029년 3.5%로 늘어나게 돼 나토 새 목표치를 6년 앞당겨 달성할 수 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국산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를 12대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CNN방송은 “스타머 총리의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지출이 충분하지 않다고 반복적으로 비판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나토 집단방위체제의 근간이 되는 북대서양조약 5조 이행을 확약하지 않아 또다시 유럽의 불안을 부추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헤이그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나토 조약 5조를 지킬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당신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 5조에는 여러 정의가 있다”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 5조에는 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받으면 나토 전체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해 무력 사용을 포함한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애매한 답변에 화들짝 놀란 나토 정상들은 해석의 여지가 없다고 앞다퉈 강조했다.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는 “미국이 조약 5조를 100 지지한다고 생각한다”고,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5조는 해석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