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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한국판 ‘천인계획’을 서두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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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25 23:33:59 수정 : 2025-06-25 23: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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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2008년부터 인재육성 박차
학자들에 연구비·교수직 보장
AI·전기차 등 과학굴기 뚜렷
韓도 국가주도 인재육성 절실

의과대학이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지 30년, 서울대학교 공대 김영오 학장이 지난 17일 비명을 질렀다. 김 학장은 “고급 공학 인재가 턱없어 부족하다. 국가 주도의 인재 육성이 시급하다”면서 ‘한국형 천인계획’을 제안했다. 천인계획(thousand talent program)은 중국이 2008년부터 시행하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다. 중국이 과학 논문 수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딥시크와 같은 인공지능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전기차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태세를 보이는 등 과학기술 굴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그렇게 되자 중국의 성공 비결에 외부인은 궁금해했고, ‘천인계획’을 그중 하나로 얘기한다.

나는 한국의 물리학자, 화학자, 생명과학자를 한 명씩 찾아다니며 지난 7~8년간 꾸준히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무슨 연구를 어떻게 해왔는지를 물었다. ‘천인계획’과 관련해서는 김근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있는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 내 방사광연구소(ALS)에 가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때 그와 함께 일하던 중국인 동료가 있었다. 그는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마치고 베이징의 칭화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천인계획 수혜자가 되었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김 교수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천인계획에 선발된 학자에게 20억원의 스타트업 연구비를 준다. 당시에 한국은 김 교수와 같은 신임 교수가 연구실을 꾸리는 비용으로 2억원 받기도 쉽지 않았다. 그 중국 교수는 뭉칫돈을 받아 연구에 필요한 장비인 각분해광전자분광기(ARPES)를 구입했다. 김 교수도 그 장비가 필요하나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박사후연구원 때 연구했던 미국 버클리로, 또 시설이 있는 영국 옥스퍼드 인근의 다이아몬드 방사광가속기 연구소로 실험하러 간다. 김 교수는 “중국 동료와 나는 분야가 같다. 경쟁해야 할 관계인데 출발부터 다르다. 그는 미국에서 했던 연구를 칭화대로 옮겨 곧장 시작할 수 있었으나, 나는 자리 잡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천인계획 얘기는 서울대학교 J교수로부터 들었다. 그는 천인재 프로그램 수혜자였다. 서울대에 오기 전에 중국 광둥성 선전의 한 대학교에서 일할 때 ‘청년 천인재’였다. 그가 선전에 있는 대학교에 부임하니, 총장은 베이징대학교 부총장 출신이었고, 학장은 미국 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근무하다가 옮겨온 중국인이었다. 학교를 키우는 데 열심이었다. 학장이 “당신이 논문을 많이 쓰면 우리는 행복하다. 한국 대학교로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거라. 가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고 가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초기 연구비로 10억원쯤 줬다. 그가 중국어를 못하니 통역비서 한 명을 붙여 줬다. 박사후연구원 인건비도 학교에서 줬다.

연말이 가까워졌을 때 학교 측이 그를 베이징 당국에 천인계획 후보로 추천했다. 천인계획은 연구자 본인이 신청하는 게 아니라 소속 기관이 추천한다. 연말에 베이징의 한 호텔에서 열린 중국과학원의 면접심사를 봤다. 한두 달 지나서 천인재로 선발되었다는 증명서가 날아왔다. 천인재에 선발되니 연구비가 나오는데, 광둥성에서도 축하금을 보내왔다. 광둥성의 축하금은 천인재 지원금의 10~20% 규모였다. 또 선전시가 연구비와 생활비를 일부 제공했다. 돈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J교수에 따르면, 천인재가 되면 중국 지방 대학교수는 바로 정년을 보장받는다. 베이징에 있는 베이징대학교나 칭화대학교는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시킨다고 했다. 그는 이런 돈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한국에 왔다. 서울대학교로 가겠다고 하니 학장, 부총장, 총장이 나서 붙잡았다. 총장은 백지수표를 제안했다. 연봉 얼마 받고 싶으냐, 홍콩에 살고 싶으면 홍콩에 주택을 얻어주겠고 차량도 제공하겠다고 했다.

연세대 김 교수는 내게 “중국 과학이 너무 무섭다. 10년 지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게 5년 전이다. 10년이 아니라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중국 과학이 한국을 추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어떻게 할 것인가?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한국을 대표하는 공학자의 호소에 한국사회는 답해야 한다.

 

최준석 과학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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