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리에서 전기차를 보는 일은 그리 낯설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한 존재였지만 이제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배터리는 있었지만, 충전소가 턱없이 부족했고 소비자들의 신뢰도 낮았다. 전기차가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술의 연결’이었다. 고속 충전 배터리, 충전 인프라, 차량과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자 비로소 산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풀사료 산업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에 걸쳐 품종 개발, 재배 기술, 건초 제조·가공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의 성과를 쌓아 왔지만 농가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했다. 기술이 ‘따로’ 작동하고 유기적인 연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러한 기술들을 하나의 체계로 엮어 현장에서 통합적으로 작동하는 ‘전주기 기술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산업을 움직이는 힘은 더 이상 개별 기술이 아니라 기술 간의 연결과 통합에 있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Italian ryegrass, IRG)는 우리나라 겨울철 사료작물 가운데 가장 많이 재배되는 핵심 자원이다. 전국 풀사료 재배면적의 66%, 동계 사료작물 생산량의 86%를 차지하며 국내 축산농가의 사료 기반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는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종자의 약 75%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기상이변이나 국제 물류 불안, 국제 가격 변동, 검역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수급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곧 사료비 상승과 농가의 경영 리스크로 이어진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립축산과학원은 국산 풀사료 자급률 향상을 위한 핵심전략 중 하나로 추진해 온 IRG 전주기 국산화 기술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단순 품종 개발이나 장비 보급에 그치지 않고, 품종 개발부터 종자 생산, 안정 재배, 고품질 건초 가공,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 통합형 기술이다.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한 농업 분야에서는 기상 변화에 강하고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한 품종 개발이 절실하다. 이에 국립축산과학원은 최근 국내 기후에 적합하고 생산성이 우수한 다수확형 IRG 신품종 ‘얼리버드’(극조생), ‘오아시스’(조생), ‘스파이더’(중생)를 개발했다.
종자 자급의 핵심인 ‘종자 건조기’도 큰 전환점이다. 기존에는 종자 채종 시기가 장마철(6월)과 겹치는 탓에 자연건조가 어려웠다. 새로 개발된 건조기는 수분 30~40%의 종자를 하루 2t 이상 균일하게 건조할 수 있어 안정적인 국내 종자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뿐만 아니라 사료피, 목초류 등 다양한 풀사료 작물에도 적용할 수 있어 산업 전반으로의 기반기술로 성장할 전망이다.
2021년 개발한 ‘열풍건초 생산시스템’도 이번 전주기 기술체계에 본격 편입되며, 수확 직후에도 건초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실용기술로 그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잦은 장마로 건초 생산이 어려운 국내 여건에서 더욱 효과적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기후 변수에 흔들리지 않고 품질 높은 국산 건초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국산 풀사료의 자급률을 높이는 일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축산농가의 부담을 덜고, 국가 식량 안보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 전체의 전략적 선택이다. 실용기술이 현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이를 통해 우리 축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이 한층 더 강화되기를 기대한다.
임기순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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