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뇨병콩팥병(당뇨병신질환) 환자 중 일부는 약물 치료를 받아도 신장 기능이 계속 떨어지는 것과 관련해 국내 연구진이 그 원인을 밝혀냈다.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한승석·윤동환 교수와 미국 UC Davis 대학의 마리암 아프카리안 교수 공동 연구팀은 서울대병원 및 미국 당뇨병콩팥병 코호트를 대상으로 표적 및 비표적 소변 단백체학 분석을 통해, 선천 면역 체계인 ‘보체 시스템’이 당뇨병콩팥병의 빠른 진행에 밀접하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보체 시스템을 구성하는 보체 단백질은 예후가 불량한 당뇨병콩팥병을 식별하는 데 활용될 수 있으며, 현재 다른 질환에서 치료제로 사용 중인 보체 활성 억제제의 적용 가능성도 기대해볼 수 있다.
당뇨병콩팥병은 고혈당과 동반 질환으로 인해 사구체와 신세뇨관이 손상되면서 단백뇨가 발생하고, 신장 기능이 점차 떨어진다. 다른 콩팥 질환에 비해 예후가 나쁘며, 현재 투석 환자의 절반은 당뇨병콩팥병에서 비롯된다. 최근 당뇨병 환자와 고령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당뇨병콩팥병의 유병율도 함께 증가하면서 사회적 부담 역시 가중되고 있다.
이 질환은 환자마다 질병 진행 속도가 다르며, 그 원인은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일부 환자는 질병의 진행을 늦추는 약물 치료를 받더라도 당뇨병콩팥병이 진행되며, 진단 후 3-5년 이내 투석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고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하고 치료할 방법이 없어, 예후가 나쁜 당뇨병콩팥병을 표적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의 개발이 절실했다.
기존 당뇨병콩팥병 연구는 주로 혈액 분석을 기반으로 이뤄졌으나, 연구팀은 소변 내 단백질의 70% 이상이 신장 손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조직 검사에서 당뇨로 인한 신장 손상이 명확히 확인된 한국 당뇨병콩팥병 환자 64명을 대상으로 비표적 단백체학 분석을 실시해 소변 내 전체 단백질을 정밀하게 조사했다.
이후 소변 단백질의 발현 패턴에 따라 군집을 나누고 당뇨병콩팥병 예후 및 단백질 발현 경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신장 기능이 빠르게 악화되는 군집에서 보체 시스템 관련 경로의 활성이 가장 높고, 보체 단백질이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나타났다. 이는 ‘보체 단백질’이 당뇨병콩팥병의 빠른 진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또 연구팀은 보체 단백질의 특성과 발현 수준을 정량화한 ‘보체 점수’를 개발하고 각 환자별로 수치를 산출했다. 분석 결과, 보체 점수가 높은 환자군은 낮은 군에 비해 신장 조직 손상이 더 심했으며, 다른 임상 변수들을 모두 보정한 후에도 당뇨병콩팥병이 빠르게 악화될 위험이 2배 이상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 다인종 만성콩팥병 코호트(CRIC)의 당뇨병콩팥병 환자 282명을 대상으로 한 표적 단백체학 분석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를 통해 보체 시스템이 당뇨병콩팥병의 빠른 진행에 강력하게 관여한다는 사실이 재확인됐으며, 보체 단백질이 이러한 고위험 환자를 식별할 수 있는 잠재적 바이오마커임을 입증했다.
한승석 교수(신장내과)는 “보체 시스템 억제제가 일부 신장 질환에서 사용되며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당뇨병콩팥병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관련 연구의 필요성이 컸다”며,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이 빠른 당뇨병콩팥병 환자에서 보체 시스템 억제제가 효과를 보일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향후 관련 약물의 임상 적용을 위한 후속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신장학회 공식학술지(Kidney International Reports)’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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