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24일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서 달러 스테이블코인 사용을 억제할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시장에 침투하고 있어 통화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서둘러야 한다는 업계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유 부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고 해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안 쓸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달러 도미넌스(지배력)는 달러가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지 (스테이블코인 등) 운반 수단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금 등 실물자산에 가치가 고정돼 가격 변동성을 줄인 암호화폐를 말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예시로는 1달러에 가치가 연동된 테더(USDT)가 있다.
업계 등에선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90% 이상이 달러 기반 암호화폐인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지 않으면 각국 결제시장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유 부총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면 강한 금융규제를 받는 은행권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는 자신의 입장이자 한은의 입장이기도 하다며 “스테이블코인 도입 취지인 잠재적인 혁신 촉진 가능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입장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부총재는 “다만 중앙은행은 지급결제 안정성 위에서 물가안정, 금융안정을 달성하는 것이 기본 업무”라며 “그렇기에 스테이블 코인에 대해서도 염려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으로 그동안 외환 자유화나 원화 국제화에 대해 가졌던 기본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며 “내로우뱅킹(대출 없이 지급기능만 수행하는 은행) 허용을 포함하는 금융산업 재편 논의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한은의 주장이 지급결제 관리 권한 유지를 위한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은행부터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하더라도 한은의 권한이 유지되거나 확대되는 건 아니다”라며 “현재도 상당수 지급결제수단은 한은이 아닌 금융위원회 (소관)”이라고 해명했다.
한은은 시중은행 6곳과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 ‘프로젝트 한강’의 2차 테스트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당에서 비은행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도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프로젝트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은행권에선 정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은이 실험을 강행하는 데 대한 반발도 감지됐다.
유 부총재는 “2차 테스트는 시중은행 입장에서 인적·물적 투자를 적잖이 해야 함을 안다”며 “정부와 관련해서 논의하고 2차 테스트 시기와 내용 등은 은행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법령 정비가) 늦어지면 (2차 테스트가) 늦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면서도 “연기한다는 그런 건 아니다”라고 확답을 피했다.

◆“주택가격 상승, ‘더 큰 고려사항’ 됐다”
한편 유 부총재는 이날 서울 일부 지역에서 주택가격이 빠르게 오른 것과 관련해 “현재 금리 인하 사이클에 있지만, 가계부채는 더 염려되는 상황”이라면서 “그동안에도 고려요소였지만 더 큰 고려요소가 됐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 연준이 4번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가운데 가계부채 증가세도 이어지면서 시장에선 한은이 금리 인하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싣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전날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열린 총재 초청 은행장 간담회에서 최근 금리인하 기조 아래에서 주택시장과 가계대출 관련 리스크가 재확대되지 않도록 은행권의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가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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