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안보 우선’ 판단…현안·정세 불확실 고려
이재명 대통령이 24~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한 가운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에 이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까지 참석을 전격 보류하면서 인도태평양 4개국(Indo-Pacific Four·IP4) 중 3개국 정상이 회의에 불참하게 됐다.

IP4로 불리는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는 2022년부터 대중 견제 및 글로벌 안보 협력 강화를 위해 나토 정상회의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중동 내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각국이 자국 내 대응과 안보 등 종합적 외교 실익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시바 총리는 파트너국 자격으로 24일 오전 출국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일정 조정을 통해 출국을 취소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현지 출국 직전까지도 상황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총리가 국내에 머물며 외교안보 대응을 지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결정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이시바 총리의 불참 결정에는 다른 IP4 국가 정상들의 불참 소식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호주 언론들은 지난 20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고려하다 22일 긴박한 중동 정세 등을 이유로 참석을 철회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여러 가지 국내 현안과 중동 정세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대통령이) 도저히 직접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을 대신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할 전망이다.
당초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해당 사안이 나토 정상회의에서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의 외교적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정상회담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도 불참을 결정한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IP4 국가 정상들이 별도 회담을 열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동 회담을 조율하는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중동 사태에 직접 개입하면서 인태 지역 안보가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렸고, IP4 회담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한미 양측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정상회담 일정을 조율 중이었으나, 중동 상황을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최근 나토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불참 결정이 서방 등 국제사회에 ‘친중’, ‘친러’ 외교를 중시한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불참으로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돼 중국과 러시아의 강압 외교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자유 민주 국가 진영의 회동이 된 나토에 우리만 빠진다면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은 어떻겠냐”고 비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의 불참은 나토 IP4에 반드시 동조하는 입장이 아니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며 “트럼프가 보기에 한국이 중국 견제에 계속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 향후 관세나 북핵문제 등 기타 협상에서 굳이 한국과 논의할 필요가 있겠냐는 시각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번 결정이 급박한 중동 정세와 한반도 안보·경제 이슈를 직접 관리하려는 전략적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군사학과)는 “한국으로 들어오는 중동산 원유의 7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이란이 해당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며 “당장 우리 경제에 끼칠 파장과 향후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 등을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IP4 차원의 협의가 이어지고 있고 중동 에너지 위기 대응에서의 공조 가능성도 열려 있어 이번 불참이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정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조 교수는 “나토 국가들에게 중동 문제는 인접 지역의 안보 위협이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호주, 뉴질랜드는 석유 공급 문제를 제외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발언권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향후 원유 공급에 타격이 발생할 경우 IP4 국가 전체와 나토 간 공동 대응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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