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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숨결로 피어난 나비… 불멸의 존재로 날아오르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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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24 06:00:00 수정 : 2025-06-23 19: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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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가’ 꿈꾸는 미술가 최선

서로 다른 이들 참여형 프로젝트 ‘나비’
캔버스 위 잉크 불어 형상 만들어내

살처분된 돼지 수로 채운 ‘자홍색회화’
고통 외면한 채 효율만 좇는 태도 지적

태평염전서 서식 함초 그린 ‘부작함초’
폭발적 생명력·소리 없는 인내 담아
“나는 무수한 형상들의 바다 깊은 곳으로 뛰어듭니다. 형상 없는 완벽한 진주를 얻기 위해.”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기탄잘리)


인도의 시인이자 영적 구도자였던 타고르(1861∼1941)는 진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무수한 형상들이 출렁이는 바다 깊숙이 뛰어들어 완전무결한 진주를 찾는 일에 비유했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취득하려는 욕망, 그것이 설령 서로를 해치게 되더라도 버리지 못하여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세상에서, 진주 한 알을 얻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비’(914×160㎝×6점)

무수한 형상을 껴안으며 가라앉는 그 행위는, 아마도 삶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건과 감각의 표면을 넘어 실재에 다가가려는 시도일 것이다. 진실은 종종 아름다움의 형식을 빌려 나타나지만, 결코 형상에 갇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사라지고 비워지는 자리에서 발현된다.

◆진달래빛 그림자… 최선의 잠행하는 예술

미술가 최선(52)의 예술적 실천은 이처럼 깊은 바다를 향한 잠수와도 같다. 오랜 시간 그는 아름다움의 외형과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교묘하게 비틀며 ‘미와 추’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 관념을 흔들어 왔다. 폐전등, 오수, 길에 떨어져 밟힌 오디, 돼지기름, 동물의 뼈와 뼛가루처럼 버려지고 잊혀진 것들이나 혐오를 유발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찾아왔다.

최선은 자신을 소개할 때 “현대미술을 통해 ‘동시대 예술가’가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목도되는 모순이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응시하는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로부터 결코 멀어지는 법이 없다. 가령 2011년에는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돼지의 수(약 350만 마리)로 가득 채운 ‘자홍색회화’를 발표했다. 멀리서 보면 진달래빛 천이 흩날리는 낭만적인 광경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돼지의 육질 등급을 표시하는 마젠타 색 숫자들이 빼곡하다. 고통을 외면한 채 효율만을 좇는 인간의 태도, 그 속에서 희생된 또 다른 존재들의 가슴 아픈 현실(지켜보던 돼지 주인의 자살, 방역 작업을 하던 공무원의 과로사 등)을 ‘아름답게 포장된’ 형상을 빌려 기록한다.

 

작가는 이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형태와 그에 대조되는 현실을 병치시켜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나 외면해온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 속에는 엘리트주의와 서구 중심 가치 체계에 대한 맹목적 수용과 같은 예술의 고질적 문제뿐 아니라,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는 전쟁과 착취를 무심히 지나치는 우리의 일상적 무감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담겨있다. 작가는 아름다움이라는 감각의 외피를 걷어냄으로써 우리의 삶과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연약한 숨결이 그려낸 불멸

최선의 작업에는 ‘걷어냄’이 근본적으로 작용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 드러낸 그 자리에서 화합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의 예술은 날카로운 양날을 지니지만, 그것은 공격을 위한 것보다는 모두를 위한 치유와 성찰을 향해 있다.

2014년에 시작된 ‘나비’ 시리즈는 그 지향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인종과 사회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들이 캔버스 위의 잉크를 올리고 숨을 불어넣는 이 참여형 프로젝트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힘이나 기술이 아닌, 존재 그 자체의 작은 ‘숨’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우리를 구분 지어 버리는 모든 외형적 조건들이 사라진 자리에, 서로의 숨결로 피어난 수많은 나비의 펄럭임이 가득하다. 그것은 ‘하나’로 향하는 ‘수많은 다름’의 진동이며, 우리를 나누던 모든 경계와 형상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최선의 작업을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은 하나로 녹아들지만,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 됨’을 통해 전체를 단단히 엮고, 그 안에서 존재들은 하나의 불멸이 된다.

◆그리지 않기 위한 그리기

형상의 환영에서 벗어나 본질에 다가가려는 시도는 이른바 ‘그리지 않기 위한 그리기’라는 독특한 태도로 구체화된다. 신안 증도의 태평염전에서 살아가는 함초를 그린 ‘부작함초’(2021)는 이러한 태도를 선명히 보여준다. 염전에 서식하는 함초는 자신을 말려 죽일지도 모를 만큼 염분이 높은 환경에서 도리어 그것을 먹고 자란다. 삶의 조건을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삼켜 붉게 물든 이 식물로부터 작가는 고통을 견디는 생명의 숭고함을 발견했다. 그 폭발적 생명력과 소리 없는 인내는 염부가 덮고 자던 이불 위에 그려지고, 또 종이에 옮겨져 그려졌다. 핏줄 선 눈으로 피를 토해내는 듯한 모습이기도 하고, 타오르는 화염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자신을 소모시켜 어둠 속에 빛을 남기는 촛불의 모습과도 같다.

 

‘부작함초(不作鹹草)’(265×195㎝)

작가는 염전에 머물며 함초 같은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그는 쉬는 틈틈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작은 노트에 볼펜으로 난초를 무수히도 그렸다. 그렇게 자신을 다시 일으키던 그의 모습에서, 작가는 삶을 대하는 진실된 태도를 본 듯하다.

그리기 위한 그림(作)이 아닌, 그리지 않는 그림(不作). 작가는 그로부터 추사 김정희의 ‘부작란도’를 떠올렸다. 추사는 난을 치면서도 자신은 난을 그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그림이라는 물성을 넘어, 자연의 본질과 하나가 되려는 정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부작은 소극적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비우고 사라지게 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가려는 적극적 수행이다. 그 무한한 반복의 과정은 그림이 아닌 삶에 대한 자세이다. 최선은 그 태도를 작업의 끝이자 시작으로 삼는다.

◆완전한 비움을 향하여

최선은 “예술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예술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지우려는 것은 ‘형식’으로서의 예술 혹은 물신화된 작품이지, ‘삶을 위한 태도’로서의 예술은 아닐 것이다. 그의 예술에는 늘 사람이 있고, 삶이 있으며, 밟히고 버려진 것들이 함께한다. 작가에게 그것들이 예술을 선행한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아무것도 그릴 필요가 없는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눈 뜨기 어려울 만큼 따갑고 짙은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형상을 버리고 예술을 지우며 더 깊이 침잠한다. 예술의 본질, 나아가 삶의 의미를 되묻는 수행은 마침내 자신조차 비워낸다. 치고, 쳐내고, 잘라내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자리에서, 마침내 진흙 속 한 알의 진주가 드러날 때까지.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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