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과 일본 외무성은 지난 17일(현지시간)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캐나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는 보도자료를 각각 배포했다. 정상회담을 비롯한 외교 회담 자료는 해당 정부의 관심사와 우선순위에 기초해 작성된다. 이를 비교해 차이점을 살펴보면 각국 외교 기조를 더 뚜렷하게 분석할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첫 정상회담에서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한·일관계 발전에 뜻을 모았다. 양국 정부 보도자료도 이에 초점을 맞춰 큰 차이가 없었다. 대통령실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상호 국익을 도모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계속 논의해 나갈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일본 외무성은 “양국 간 국민 교류나 경제면에서의 교류가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을 근거로 정부로서도 그러한 대처를 뒷받침해 나가기로 일치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대북 공조 필요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양국 정부 자료의 북한 관련 언급은 다음과 같다.
“북한 문제를 포함한 지역의 여러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한·미·일 공조를 지속 유지, 발전시키고, 한·일 간에도 협력을 심화하자고 하였습니다.” (대통령실 보도자료)
“핵·미사일 문제 및 납치 문제를 포함한 대북 대응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한·일, 한·미·일 간 긴밀히 공조해 나갈 것을 확인했습니다.” (일본 외무성 보도자료)
양국 다 두 정상이 한·미·일 공조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고 발표했지만 뉘앙스 차이가 있다. 한국은 북한 문제를 ‘여러 지정학적 위기’ 중 하나로 표현했고, 구체적인 이슈를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은 ‘대북 대응’을 한·미·일 공조가 필요한 이유로 꼽으며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 문제를 콕 집었다. 납치 문제는 일본이 북한 관련 최우선 현안으로 여기는 이슈다. 일본 정부는 1970∼1980년대 일본인 17명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납북됐다고 주장해왔다.
이시바 총리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도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 문제를 말했다. 대통령실은 브리핑에서도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당시 이시바 총리의 납치 문제 발언에 직접적으로 답하진 않고 다른 의제를 꺼내며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9일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의 첫 정상통화 때도 일본은 발표자료에 납치 문제를 명시했지만, 대통령실 브리핑엔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윤석열정부와 두드러지는 차이점이기도 하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인권 문제 공조를 한·일 간 주요 의제로 삼아왔다. 우리 외교부는 지난해 10월 2일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의 정상통화 내용에 대해 “일본인 납치피해자와 우리 납북자, 억류자, 국군포로 문제 등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재명정부 대외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아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한·일관계 발전과 한·미·일 협력은 계속해나가되 가치외교 영역에선 ‘톤 조절’을 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한·일의 북한 및 대외정책에 대한 인식 차이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향후 이재명정부가 북한인권, 핵·미사일 문제 등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는 “이재명정부 대북정책 기조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북·일 간 민감한 문제인 납치 문제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며 “한국이 납치 문제에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일본은 양국 협력의 상징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득실을 계산해 입장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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