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15일 제68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맞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은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열어갈 중요한 이웃”이라면서도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최근 상황이 한·일 양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를 향해 과거사를 직시할 것을 촉구하며 “책임 있고 성의 있는 조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2015년 12월 일본 측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 방안에 전격 합의했다. 대다수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이 조치는 되레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위안부 합의 후 꼭 1년 만인 2016년 12월 박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를 당했다.

2019년 한·일 관계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강제동원과 관련해 ‘해당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확정한 게 발단이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것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해 제74주년 광복절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일본 측 조치를 ‘경제 보복’으로 규정했다. 한국이 ‘책임 있는 경제 강국’이 돼야 한다면서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을 이긴다는 뜻의 ‘극일’(克日)을 시대적 화두로 제시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연설을 끝맺었는데, ‘우리가 일본과 싸워 이길 수 있다’라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2024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는 상당수 국민에게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윤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35년간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을 위로하거나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요구하는 말은 연설에 한마디도 넣지 않았다. 대신 이른바 ‘반자유 세력’을 겨냥해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 맹비난했다. “검은 세력의 거짓 선동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내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바로 그 ‘국민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나 싶어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는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질타 속에 파면을 당하고 말았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인 동시에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80년 전의 원수와 친구가 되고 그로부터 60년이나 흘렀다니, 만감이 교차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일본에 대한 인식이나 태도는 진영에 따라 상이할 수 있으나, 식민 지배의 역사는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80년 전 조국을 되찾은 선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고 과거사를 대하는 일본의 전향적 자세를 주문함이 마땅하다. 아울러 60년 전 한·일 수교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일본에 화해와 협력의 손길도 내밀기 바란다. 일본이 이 대통령 말대로 “중요한 파트너”라면 우리도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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