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부터 이틀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담이 예정돼있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의 국방비 증액안에 대해 좀처럼 일치된 의견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와 지리적,역사적으로 거리가 있는 남부·서부 유럽 국가들이 증액안에 난색을 표하기 때문이다.
EU 전문 매체인 팔리아멘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유럽 남부,서부에 위치한 국가들이 GDP의 5%에 달하는 국방비 증액안을 거부하면서 나토 내부의 긴장이 극대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최근 스페인이 올해 말까지 국방비를 GDP의 2%로 달성할 것이라는 입장이며, 이 계획조차도 광범위한 비군사적 지출을 국방 범주에 포함기 위해 정의를 확대했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장관은 앞서 “5%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존중하지만, 2%면 우리의 전력 공약을 충족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국민 여론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에서 국방 예산으로 더 많은 자금을 전용하는 것에 여전히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산체스 총리는 국내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주 그의 측근인 사회노동당 고위 관계자가 부패 혐의로 조사받기 시작하면서 산체스 정부 내 22명의 장관 중 5명을 차지하는 좌파 연합 ‘수마르’는 총리와 공개적으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벨기에 역시 국방비 증액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벨기에는 올해 초 약속했던 2% 경제성장 목표에 대한 구조적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바르트 더 베버르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벨기에의 128억 유로 규모의 국방 예산 계획은 올해 이후로는 자금이 지원되지 않고 있다. 막심 프레보 외무장관은 5%의 방위비가 과도하다고 규정하고 3.5%조차 단기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도 예산 압박에 직면해 있다. 최근 2%에 도달한 이탈리아는 5%를 달성하려면 매년 600억 유로 이상의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국가 부채가 현재 사상 최고치인 3조 유로를 넘어선 상황에서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다. 포르투갈은 2029년까지 현재의 2%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룩셈부르크는 국방 예산 증액에 대한 정치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지출을 얼마나 빨리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반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핀란드, 덴마크를 포함한 동부 및 북부 나토 회원국들은 5% 목표를 대체로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위협을 즉각적이고 실존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미 상당수가 국방 예산을 증액했다. 체코,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를 포함한 몇몇 동유럽 국가들도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5% 목표를 향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는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특히 폴란드는 차입과 강력한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2024년 GDP 대비 4.1%였던 지출을 2025년 4.7%로 확대했다. 에스토니아는 향후 4년간 28억 유로의 추가 국방비 지출을 승인했으며, 핀란드는 국방비 지출 증가를 지원하기 위한 대규모 세제 개혁안을 발표했다.
바네스 베르스트라에테 브뤼셀 자유대학교 연구원은 팔리아멘트에 “폴란드와 발트 3국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공산주의 통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반면 서부, 남부 유럽은 그런 역사적 인식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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