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북한만 적국인 상황에서
간첩 처벌 못 하는 간첩법 전락
주요국은 ‘적국’ 아닌 ‘외국’ 규정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간첩법(형법 98조) 개정 필요성에 대해 “반드시 빨리 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것을 계기로 간첩법 개정 작업이 다시 활기를 띨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왜 개정해야 하나

형법상 간첩법은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적국’은 현실적으로 정전협정을 맺은 북한뿐이다. 현행 규정대로면 적국인 북한을 제외한 어느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해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다.
동시에 북한은 우리 법체계상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취급된다. 그런데 북한 간첩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경우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 때문에 북한 간첩에게는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현행 간첩법으로는 북한 간첩도, 그 밖의 해외 어느 나라 간첩도 처벌할 수 없는 셈이다.
이처럼 허술한 간첩법은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단 한 번도 고쳐지지 않았다. 지금의 간첩법은 일본의 전시(戰時)형법을 모방한 것이어서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세계 주요국은 간첩법 처벌 대상을 ‘적국’에 한정하지 않고 ‘외국’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도 국제 흐름에 맞게 간첩법상 ‘적국’을 ‘외국’으로 수정하는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일각에선 과거 공권력에 의한 용공조작 사례를 들어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법망 미비 상황에서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 북한 간첩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마저 사라지게 된다는 우려 목소리가 높다.

◆법 개정 논의 중단, 왜?
지난해 7월 군 정보요원 신상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잇달아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간첩법 개정 지연을 둘러싼 여야 책임공방이 불거진 끝에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를 통과했다. 이후 개정안은 공청회를 거쳐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국회의 간첩법 개정 논의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헌·불법적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멈춰 섰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계엄 선포 사유 중 하나로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간첩법 개정 반대’를 제시한 것은 법 개정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됐다. 윤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안보 사안인 간첩법 개정의 정당성이 한순간에 위헌·불법 계엄을 정당화하는 핑곗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간첩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고 국민의힘 대표 취임 후엔 이 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는 데 앞장섰던 한동훈 전 대표가 계엄군의 체포 대상에 올랐던 것도 윤 전 대통령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 요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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