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 다변화의 중요 통로
조선 등 전략산업 선택과 집중
국제규범 주도 기반 마련해야
2025년 6월15일부터 17일까지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신정부 출범 이후 한국 외교가 처음으로 맞이한 다자무대였다. 준비 기간이 극히 짧았던 상황 속에서 국익에 실질적으로 부합하는가에 대한 전략적 검토가 긴박하게 진행되었다.
이번 회의는 G7이 스스로 서방 선진국 클럽이라는 기존의 폐쇄적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우크라이나, 호주 등 7개국 정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초청을 받았다. 의장국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는 “21명의 정상과 대표가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모였다”며 회의의 대표성을 강조했다. 그는 G7이 더 이상 ‘구질서(old order)’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질서(new order)’를 설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G7 변화의 이면에는 국제 질서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G7 출범 당시인 1975년, 이들 국가가 세계 GDP의 70%를 점유했지만 2023년 기준으로는 43% 수준까지 하락했다. 인구 비중 역시 10%에 미치지 않으며 군사력과 기술력 측면에서도 독점적 우위를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기후위기, 디지털 규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대응 등 초국가적 의제는 더 이상 G7만으로 감당할 수 없고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기존 다자 기구들이 기능 부전 상태에 빠진 가운데, G7은 유연하면서도 실질적인 협의체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동시에 브릭스, 주요 20개국(G20),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 등 다양한 소다자 협의체가 부상하면서, G7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내적 성찰도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외연 확대와 협력 흐름에도 불구하고 G7의 회원국 확대 논의는 여전히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회의 종료 후 회원국 전원이 서명하는 공동선언문 대신, 6개의 분야별 성명서만 발표된 것은 핵심 의제에 대한 이견 조율의 한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당분간 G7은 내부 결속과 서방 중심 정체성의 유지를 우선시할 가능성이 크다. 나토와의 전략적 연계가 강조된 점 역시 G7이 서방 중심의 전략 공동체라는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G7은 여전히 전략적 가치가 크다. 규범 형성 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축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중요광물 공급망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국제 표준을 선도하는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동 대응 사례에서도 드러났듯, 위기 대응 연합체로서의 기능 또한 유효하다. 한국 입장에서 G7은 글로벌 의제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외교적 존재감을 확장할 수 있는 드문 무대이자, 외교 다변화의 중요한 통로이기도 하다.
한국과 호주를 포함한 G9 형태로의 공식 확대는 단기적으로 가능성이 낮지만, 한국은 2018년 이후 거의 매년 초청국 자격으로 G7 정상회의에 참여해 왔다. 확대 세션 발언, 정책 제안, 협력 프로젝트 기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질적 기여를 이어온 만큼 한국은 G7을 규범 외교의 핵심 무대로 삼고, 영향력·의제 주도성·실질 성과를 기준으로 전략적 개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반도체, 양자기술, 배터리, 조선 등 전략 산업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함으로써 국제 규범을 주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서구 중심 연대 속에서 우리의 역할과 전략을 정교하게 설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나토 인도태평양 4개국(IP4·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쿼드 플러스, MIKTA(멕시코, 인도, 한국, 튀르키예, 호주) 등 다양한 소다자 협의체에 기능별·의제별로 선별적으로 참여하는 이른바 ‘포트폴리오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차별적 확장은 곤란하다. 이로 인한 외교적 자원의 과잉 분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체계적인 다자외교 참여 필터링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음 주 네덜란드에서 개최될 나토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하반기에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동아시아정상회의(EAS), G20 등 중대한 다자외교 무대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 G7에서 출발한 한국의 다자외교, 이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어야 할 때이다.
최윤정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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