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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뇌가 나를 만든다

입력 : 2025-06-21 06:00:00 수정 : 2025-06-19 2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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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앓고 전혀 다른 사람 된 남성
도파민 치료 받은 뒤 ‘원래대로’ 회복
치매에 걸려 악담 쏟아내는 환자 등
뇌 질환 사례 통해 자아 정체성 탐구

아웃사이더/ 마수드 후사인/ 이한음 옮김/ 까치/ 2만2000원

 

30대 남성 데이비드는 활기차고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뇌졸중이라는 질병은 그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놨다. 질병에서 회복됐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회사 일에도 흥미를 잃었고, 아내의 얘기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직장에서 해고됐지만, 그는 심드렁했다. 처음에는 많은 친구가 앞다퉈 그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그들이 알던 유쾌하던 친구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타인의 호의를 받고만 지내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모두 나가떨어졌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게을러졌다’거나 ‘무기력증이 왔다’, ‘우울증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뇌에 아주 작은 손상만 입어도 한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뇌는 다양한 맥락과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며 집단과 관련된 우리의 자아감을 형성한다. 옥스퍼드대학의 저명한 신경학자 마수드 후사인은 정체성의 본질과 자아의 다양한 측면을 신경과학적으로 안내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데이비드를 만난 신경과 전문의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본 후 데이비드가 그전에도 뇌졸중 경험이 있었고, 이로 인해 뇌 바닥핵이 손상된 사실을 확인했다. 바닥핵은 뇌 깊숙한 곳에 있는데 운동을 담당하는 이마엽(전두엽)이 포함된 대뇌 겉질과 고도로 연결돼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바닥핵이 손상된 환자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인다. 행동이 느려지고 떨리거나 경직이 있는 파킨슨병, 머리나 팔다리가 갑자기 홱 움직이는 헌팅턴병, 팔다리가 기이하게 어색한 자세를 취하는 ‘근육 긴장 이상’을 보이는 윌슨병이 대표적이다. 캐나다 생리학자 고든 모건슨은 이 바닥핵이 동기 부여와 행동 시작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고 봤다.

데이비드를 담당하게 된 신경과 의사는 그가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보상에 둔감해진 것으로 판단, 그에게 도파민 전구물질인 레보도파와 도파민 작용제인 로피니롤을 잇달아 투여했다. 그러자 마침내 그에게 변화가 왔다. 의사가 “병원에 오라”며 택시를 보내야만 때 낀 손톱과 기름진 머리로 겨우 나타나던 데이비드는 치료 이후 말끔하게 스스로 꾸미기 시작했다. 산책을 나가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재취업에도 성공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숙한 원래 데이비드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수드 후사인/ 이한음 옮김/ 까치/ 2만2000원

그를 치료한 신경과 의사인 저자 마수드 후사인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흔히 ‘자아’나 ‘정체성’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자란 가정이나 직업, 양육과 교육 환경, 영향을 준 사람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회 문화적 경험을 초월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근본적인 것’이 있다. 바로 뇌다. 데이비드의 사례처럼 뇌가 손상된 경우 ‘그’라고 믿었던 자아 전체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은 데이비드 외에 이마관자엽 치매에 걸려 자제력을 잃고 사람들에게 악담을 쏟아내다가 인간관계가 악화한 환자, 왼쪽 마루엽 바깥에 생긴 물혹으로 자신의 팔다리 위치를 잊어 주변 사람들을 부적절하게 만지다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자, 알츠하이머로 기억상실이 심해져 이야기를 꾸며내다가 사람들과 멀어진 환자 등 7명의 사례를 소개한다. 모두 ‘뇌 질환’이 생기기 전과 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경우다. 뇌에 장애가 생기면서 그를 규정하던 정체성도 바뀐 셈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일부 신경과학자는 새로운 뇌 영상 기법을 이용해 ‘자아’가 거주할 만한 뇌 영역이 어디인지를 콕 집어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아는 우리 뇌 기능들의 총합을 통해서 구성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아라는 것이 기억과 감정, 사회적 판단, 충동 억제, 자기 인식 등 다양한 뇌 기능이 끊임없이 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시스템임을 강조한다. ‘자아’에 뇌가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건 맞지만, 이는 뇌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뇌 밖의 사회에도 있다. 즉 다양한 사람과 맥락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면서 집단과 관련된 사람들의 자아감, 사회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뇌는 우리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아웃사이더’로 선을 긋고 집단에서 격리·배제하기도 한다.

‘관계’의 중요성은 환자들의 회복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같은 질병을 앓더라도, 가족이 옆에서 지지해주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은 사람은 더 천천히 병이 진행되거나 빠르게 회복한다. 반대로 도움을 청할 상대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이 고립된 경우 뇌 손상 이상의, 삶 전체가 붕괴했다.

기억이 사라지면 내가 사라지고, 성격이 바뀌면 다른 사람이고, 감정을 못 느끼면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닌 걸까.

책은 뇌질환 이후 차별로 배제되는 ‘아웃사이더’ 환자들의 질병 원인과 치료를 통해, 의학 이상의 실존·철학적 질문까지 나아간다.

책은 환자들의 병변이나 질병명, MRI 등 검사 영상 사진에 대한 판별에서 한 발 나아가 그들의 삶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를 따라간다. 신경과학적 지식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인간의 관계성과 사회적 교류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맞춰나간다.

결국 자아의 중심에는 ‘뇌 기능’이 있다. 저자는 “지각, 주의, 일화와 의미 기억, 동기 부여, 행동 제어와 신체도식 같은 기본적인 인지 기능은 모두 우리 정체성에 기여한다. 물론 성격 형질과 감정 반응도 자아의 정의에 중요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7명은 아주 기본적인 인지 기능들도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가슴 아프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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