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정권에 줄 댄 장성·관료 차지
항공우주 분야 국가전략산업 성장
공기업 낙하산 인사 청산해야 가능
미국의 파트너로 부상한 한국 조선업의 성장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4월 HD현대중공업 주원호 특수선사업대표를 만났을 때다. ‘한·미 함정 동맹’ 성사 여부에 대한 진단보다 그가 엔지니어 출신 대표라는 점에 더 끌렸다. 1992년 HD현대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해 HD현대 미래기술연구원장, 조선사업부 기술본부장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많은 초격차 조선 기술 연구와 함정 수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에는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한 우물을 판 엔지니어. 그런 전문가를 소중히 여기는 회사. 상종가다. 미래 또한 나쁠 리 없다.
1999년 설립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국내 굴지 항공우주 분야 방위산업체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최대 주주(지분 26.41%)이며, 국민연금도 8.56%를 갖고 있다. 공기업이나 다름없다. 초대 사장부터 현재 8대 사장까지 주로 예비역 장성과 행정고시 출신 고위관료들 차지였다. 정권에 빌붙은 낙하산 인사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기업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강구영 KAI 사장이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당일이던 지난 4일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했다. 원래 임기는 9월까지다. 정권 교체에 맞춘 뜻은 나쁘지 않으나 지나온 행적이 후한 평가를 받기 힘들다. 공군 조종사 출신인 강 사장은 전투기 개발이나 방산 수출에는 문외한이다. 그는 전역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 계엄의 주역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는 임관 동기다. 주변에선 각별하다고까지 알려졌다. 예상대로 2022년 9월 내부 인사들을 물리치고 KAI 제8대 사장으로 뽑혔다. ‘낙하산’이란 꼬리표도 함께다. 정권의 입김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나.
그가 취임한 직후 눈엣가시였던 과거 정부 임원을 대거 교체하는 ‘적폐청산’도 반복됐다. 유난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펼치듯 한꺼번에 20명에 가까운 핵심 간부를 내쳤고, 빈자리는 군 후배와 대선 캠프 출신 외부 인사들로 채웠다. 유례없는 ‘대표이사 리스크’였다. 조직은 심각한 내홍에 시달렸다. 한화에어로, LIG넥스원 등 민간기업 주가와 매출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데 KAI만 유독 게걸음했다. 실제로 KAI의 2023년 매출액은 3조8193억원, 지난해 매출액은 3조6337억원으로 5% 정도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도 낙하산은 비일비재했다. 행정고시 출신 김조원 전 사장도 그랬다. 그는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 등 주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상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긴 뒤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자 미련 없이 직을 내던졌다. 공직자의 도덕성을 거론할 때 자주 소환된다. 이외에도 정해주, 김홍경, 안현호 등 전 KAI 사장들도 ‘관피아’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이재명정부 출범과 강 사장 사의 표명으로 차기 KAI 사장 자리를 노리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개중에는 군 출신도 여럿 있다. 사장 연봉이 공공기관 대표 평균 대비 2∼3배 높은 7억8000만원(2024년 기준)에 달하는 데다 명색이 국내 최고의 항공우주 분야 방산업체가 아닌가. 군침이 돌 수밖에. 낙하산 인사는 특정 개인의 자질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책임경영 부재에서 오는 지배구조의 왜곡과 기업가치 하락, 나아가 방위산업 전반의 연속성 단절이라는 딜레마를 야기한다.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KAI 민영화 요구가 끊이질 않은 배경이다. 그게 아니라면 군인이나 관료가 아닌 전문경영인이나 내부출신 인사가 자리를 채워야 하는데 이마저도 언감생심이었다.
전문가가 아니고선 작금의 기업 환경은 버티기 힘들다. 사활을 건 생존 경쟁 탓이다. K방산이 누리는 호황 역시 지속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항공우주산업은 미래전략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더구나 KAI가 개발한 KF-21 전투기는 새 정부의 대표 수출상품이 될 수도 있다. 항공우주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우려면 정권 차원의 관심과 지원은 필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공기업 낙하산 인사의 구태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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