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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무너진 한국 의료, 새롭게 재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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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18 22:50:35 수정 : 2025-06-18 22:5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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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정책 추진·소통 실패로
1년 4개월째 의료 공백 계속
환자 고통을 중심에 두고 협력
정부·의료계, 해결책 모색해야

지금 우리 사회는 전례 없는 의료 공백 사태로 위기에 빠져 있다. 전공의 대규모 이탈 사태가 1년4개월째 이어지고 있으며 응급실 진료 중단, 수술 지연, 지방 의료 붕괴, 그리고 수천 명의 초과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갈등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길 뿐,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의 무리한 정책 추진과 소통 실패에 있다. 의대 정원을 늘려 필수·지역 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목표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된 정원 확대는 의료계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고, 이는 예고된 파국이었다. 정부는 의료계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 의료 현장의 구조적 우려와 실질적 문제는 무시된 채, 단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통계만을 앞세웠다. 특히 복지부 고위 관료들의 고압적인 태도와 교육부의 무책임한 대응은 갈등을 더욱 증폭했다. 문제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의료는 수도권 쏠림, 필수의료 기피, 수가 체계 왜곡, 민간 중심의 공급 구조 등 복합적인 병폐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어떤 구조적 개혁도 없이 ‘정원 확대’만을 만능열쇠처럼 제시했다. 근본적인 의료 시스템 문제를 간과하고 의료 시장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바탕한 문제 해결보다는 의사 수 증원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큰 실책이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의료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사들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정확하고 쉽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의료계는 복잡한 의료 구조를 국민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지 못했고 많은 국민은 이번 사태를 집단 이기주의로만 받아들였다. 집단행동으로 인한 응급실 마비와 수술 지연, 초과 사망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의료계는 국민 신뢰를 잃은 이유를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또한 ‘원점 재검토’만을 반복하며 구체적인 대안이나 타협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주요한 실책이다. 물론 의료계의 이러한 대응 역시 정부의 독단과 불신이 낳은 결과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약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해결할 기회도 주어졌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제 국민의 생명을 우선에 두고, 책임을 다하는 대화와 실천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복잡한 구호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이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변화로 보여줘야 한다.

이제는 무의미한 공방을 멈추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부는 정원 확대만이 해법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대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수 인력과 실습 환경을 보강하며, 전공의 수련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소아·분만, 외과, 응급의학과 같은 필수 진료 분야의 수가를 현실화하고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충분한 보상과 근무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지역필수의사제’와 같은 정책도 더 이상 계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무너진 한국 의료를 다시 세우기 위해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계도 지금이야말로 전문직으로서 책임을 되새겨야 한다. 반대만을 외치기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전문직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번 의료 대란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무능과 극단적 불신이 빚어낸 복합적 재난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환자의 고통을 중심에 두고 협력과 책임 그리고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국민 역시 의료 문제의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건강한 의료 시스템 구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단기적인 미봉책이 아닌 장기적인 비전과 꾸준한 노력을 통해 모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유연하고 강인한 한국 의료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교실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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