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시위대에 비살상용 탄환 발사
10대 청소년은 도로 한복판서 피격
연방 군부대도 33년 만에 시내 투입
20대 행인 바닥 눕히고 손 묶어 체포
한인타운·리틀도쿄 직·간접적 타격
“약탈 막으려 유리창마다 판자 덧대”
미국 전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노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열린 14일(현지시간) 불법 이민자 체포·추방 항의 집회의 진원지인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도 약 3만명의 인파가 몰려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했다. 이날 LA 집회는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되다가 돌, 물병 등을 던지는 시위대와 고무탄, 섬광탄, 최루탄 등을 동원한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전날에는 연방 최정예 병력인 해병대원이 자국 민간인을 구금하는 일도 벌어지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여전하다.
LA타임스에 따르면, LA경찰국(LAPD)은 이날 오후 4시쯤 시위대에 해산 명령을 내리고 비살상용 탄환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시청 앞 도로에 파란색 고무탄이 널린 가운데 한 10대 청소년이 배에 탄을 맞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목격됐으며, 그랜드파크에서는 흰색 가운 차림의 남성이 코에 고무탄을 맞은 시위대원을 치료해주고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캐런 배스 LA시장은 앞서 이날 오전 “전 세계의 눈이 LA에 쏠려 있다. 제발 당국이 개입할 구실을 만들지 말아 달라”며 평화 집회를 호소했다. 하지만 일부 시위대가 다리 위에서 경찰관들을 향해 돌 등을 던지기 시작하자 강제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LAPD 측은 설명했다. 시위는 이날 오후 8시 야간통행금지 시작 시간을 전후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고 이후 도심은 고요해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지난 6일 미국에서 불법 체류 인구가 가장 많은 LA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대적 단속을 벌이면서 시작된 시위는 이날로 9일째 계속됐다. 일부 시위대의 기물 파손, 약탈 등은 잠잠해진 양상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수천명의 주방위군에 이어 미 연방 군부대인 해병대까지 투입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현장에 배치된 해병대원들은 전날 연방수사국(FBI), 재향군인부, 여권국 사무실 등이 있는 LA 연방정부 청사에 접근하던 27세 남성 마르코스 레아오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등 뒤로 손을 묶어 구금하기도 했다. 풀려난 뒤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 육군 참전용사라고 소개한 레아오는 “재향군인부 사무실에 가려고 길을 건너려던 중에 제압당했다”고 분노했다.
해병대를 지휘하는 ‘태스크포스 51’ 사령관 스콧 셔먼 미 육군 소장이 “군 병력은 법 집행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 것과 달리, 연방군이 자국 시민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레아오는 2시간 만에 풀려났지만, “연방군이 미 영토 내에 배치되는 일은 드물고, 미국 시민을 일시적으로라도 체포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미 해병대가 시위 현장에 투입된 것은 1992년 이후 처음일 만큼 이례적이다.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대통령에게 군 지원을 요청했던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대통령 지시로 해병대가 파견된 것인 만큼 지방정부에서도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배스 시장은 “(LA 내) 한인타운 내 주민과 사업장이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도록 LAPD와 긴밀히 협력해 공공안전을 확보할 것”이라고 입장을 내기도 했다. LA 도심에서 6.5㎞가량 떨어진 한인타운에도 최근 산발적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서 가까운 일본인 거리 ‘리틀 도쿄’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라멘집으로 알려진 고라쿠는 최근 매상이 평소의 5분의 1로 떨어졌으며, 인근 일본계 호텔도 이달 이후 수백 건의 숙박 예약이 취소됐다. 리틀 도쿄에는 수백 곳의 일본인 상점이 있는데, 약탈 방지를 위해 대부분 상점이 유리창에 판자를 덧대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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