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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라과 첫 여성 대통령 차모로, 95세 일기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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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15 08:19:02 수정 : 2025-06-16 0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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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사회주의 정권 끝내고 민주화 시동
임기 중 극심한 경제난… 뚜렷한 업적 없어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가원수를 지낸 비올레타 차모로 전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니카라과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비올레타 차모로(1929∼2025). 사진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10년 가까이 지난 77세 때의 모습. A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AP,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차모로는 이날 니카라과와 국경을 맞댄 이웃나라 코스타리카 수도 산호세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의 자녀는 성명에서 “어머니는 사랑하는 가족에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오늘날 악명 높은 독재 국가인 니카라과를 떠나 코스타리카에서 망명 생활을 해온 고인의 유해는 니카라과가 민주공화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코스타리카에 안치될 예정이다.

 

차모로는 1929년 10월 니카라과 남서부 도시 라바스에서 지주의 딸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 환경 덕분에 미국으로 유학한 차모로는 언론인 페드로 호아킨 차모로(1924∼1978)와 결혼한 뒤 네 자녀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페드로는 니카라과의 유력 신문사 ‘라 프렌사’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다. 그는 당시 니카라과에서 철권 통치를 펼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1925∼1980) 대통령의 독재 정권에 비판적 논조를 취하다가 암살을 당했다. 이에 차모로는 남편을 대신해 ‘라 프렌사’ 경영의 전면에 나섰고 소모사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1979년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소모사 정권을 축출하고 새 정부를 수립했다. 산디니스타는 여러 정당·세력과 연합해 국가재건위원회를 세우고 각종 경제·사회 개혁 조치를 내놓았다. 차모로도 한때 재건위에 참여했으나 ‘쿠바와 같은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란 우려를 드러내며 결국 산디니스타와 결별했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미국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산디니스타 정권을 미워했다. 그래서 니카라과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한편 산디니스타에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을 적극 지원했다. 결국 1988년 산디니스타와 콘트라 간에 협상이 시작돼 민주공화국 수립과 1990년 대통령 선거 실시에 합의했다. 이 선거에서 산디니스타에 비판적인 모든 야당을 대표해 후보로 출마한 차모로가 당선되며 니카라과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90년 4월 니카라과 대통령에 취임한 비올레타 차모로가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차모로 정부는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과거사 청산과 언론 자유 신장 등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적 시행에 따라 서민의 삶은 팍팍해졌다.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좌파의 영향력이 다시 커졌고, 특히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대표를 지낸 다니엘 오르테가(1945∼ )는 호시탐탐 대통령직을 위협했다.

 

차모로는 6년이 조금 넘는 임기 동안 민주주의의 진척 말고는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1997년 1월 물러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선거로 선출된 후임자에게 평화롭게 정권을 이양한 점이 그나마 성과라고 하겠다. 하지만 니카라과의 취약한 민주주의는 오래 못 가고 결국 무너져 2007년부터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오르테가의 독재 정권이 이어지고 있다.

 

1997년 대통령에서 물러나기 직전 차모로는 자서전 ‘마음의 꿈’(Dreams of the Heart)을 펴냈다. 이 책에서 차모로는 니카라과 정치에 있어서 ‘용서’와 ‘화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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