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여름 밤 서울 은평구의 아파트 단지에서 일본도를 휘둘러 이웃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에게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중국 스파이’라고 믿는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윤성식)는 13일 살인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백모(39)씨에게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백씨는 지난해 7월, 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장식용 일본도를 들고 이웃 주민 A씨(당시 40대)를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1심에 이어 2심 재판부도 피고인의 책임을 무겁게 판단했다. 다만 검찰이 요청한 사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형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라며 “여러 사정을 고려했을 때 사형 선고는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피고인 측이 주장한 심신미약 감경 사유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칼을 휘둘러 사람을 살해할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를 피고인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다”며 “심신미약이 인정된다고 해도 형을 감경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재판부는 범행의 잔혹성과 재범 가능성을 주목했다. “피해자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수단과 방법이 매우 중대하다”며 “피고인뿐 아니라 일부 가족들도 범행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여, 향후 재범 위험도 중간 이상으로 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을 향해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유족이 여러 차례 탄원서를 제출했고, 재판부도 그 내용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며 “사형 요구가 무리하거나 과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살인에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 무기징역이 유족께는 부족하게 느껴지시겠지만, 그 판단을 헤아려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선고 직후 방청석에 있던 유족들은 “심신미약이라고 이렇게 봐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오열했다.
백씨는 사건 발생 전부터 “중국 스파이가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는 망상에 시달렸으며, 피해자를 감시자라고 믿고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용된 일본도는 날 길이 약 75㎝, 전체 길이 102㎝에 달하는 장검으로, 장식용으로만 허가된 물건이었다.
앞서 1심 재판부도 “범행 동기와 수법이 극도로 불량하고, 책임이 매우 무겁다”며 무기징역과 함께 20년간 전자발찌 부착, 유족 접근 금지, 정신과 치료 등의 조건을 부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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