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세계적으로 여성의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위 임원직에서 여성의 지위는 단순히 정체된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3일 유엔 여성기구(UN Women)의 최신 간행물인 ‘여성 정치 지도자들’(Women Political Leaders 2025)에 따르면 국가 원수와 정부 고위 관계자를 비롯해 주요 장관직 등에서 여성은 지속적으로 낮은 대표성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 리더십에서 광범위한 장벽과 성평등에 대한 취약하고 불균형적으로 부족한 주류 사회의 헌신을 방증하고 있다.

보고서는 오늘날 여성을 국가 원수로 둔 나라가 27개에 불과하며, 여성이 최고 행정직에 오르지도 못한 나라는 103개국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불균형은 장관 대표성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전세계적으로 올해 여성 내각 비율은 22.9%에 불과해 2024년(23.3%) 대비 줄었는데, 이는 여성 장관 수가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여성이 50% 이상인 동등 내각을 가진 나라도 지난해 15개에서 올해 9개로 급감했다. 반면 장관직에 여성이 전무한 국가는 지난 한 해 동안 7개국에서 9개국으로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유럽과 북미(31.4%),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30.4%)의 여성 내각 비율이 겨우 30%를 넘는 수준으로 점유율을 주도하는 동안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는 9%에 그쳤다.
여성의 대표성이 감소하는 현상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전세계적인 반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여성 정치인을 표적 삼는 광범위한 폭력이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나타났다고 분석된다.
UN Women은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플랫폼 모두에 걸쳐 존재하는 이러한 폭력은 많은 여성이 정치 지도자로 진출하거나 경력을 이어가는 것을 막고, 대표성에서의 성평등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대표성 하락과 함께 기존의 성 규범과 관행은 내각 구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87%), 재정(84%), 외교(82%) 등 국가 및 국제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내각 직책에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여성은 양성평등(87%)과 가정 및 아동 문제(71%) 관련 직책에 주로 임명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 정책으로 성평등 규범을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평등부의 수 또한 감소 추세다. 2020년 약 80개이던 관련 부처는 2024년 76개, 2025년 74개로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UN Women은 임원 임명, 여성 할당제 같은 임시 특별 조치, 정치적 폭력에 대한 더 강력한 보호를 통해 과감하고 긴급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시마 바후스 UN Women 사무총장은 “세계는 포용적 의사 결정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여성의 정치적 리더십이 침식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여성이 최고위 리더십에서 배제되면 우리 모두가 손해를 본다. 성별 균형적 리더십에 의해 가능한 공평한 통치를 포기하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정치적으로 여성이 지워지는 현상은 최근 한국에서도 우려를 낳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파면을 촉구하는 광장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이 청년 여성들이었음에도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여성 의제가 실종되며 비판을 불렀고, 이재명정부 출범 후에도 수석비서관에 여성이 한 명도 임명되지 않는 등 ‘유리천장’ 논란이 야기됐다. 이어질 장관 인선에서 여성 비중이 30%는 넘어야 ‘성평등 내각’의 최소 조건이나마 턱걸이하는 상황이라 여기에 이목이 집중된다.
윤석열정부 때 존폐 기로에 놓인 여성가족부를 이재명정부는 성평등가족부로 이름을 바꿔 기능을 확대개편 한다는 입장이다. ‘초미니부서’로 힘을 쓰지 못했던 여가부가 실질적으로 규모가 커진다면 유의미한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최근 이 대통령이 “남성의 고충을 담당하는 부서를 신설하는 것“을 부처 기능 확대와 연관해 언급함으로써 다소 의미가 퇴색한 상황이다. UN Women에서 지적했듯이 여성 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반발이 확산하는 시점에 이러한 형태의 기능 확대는 오히려 성평등이 후퇴한 사회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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