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개국 244개 기관서 1600명 참석
최재천 교수 등 기조강연자로 나서
생물다양성 지키는 보루 역할 강조
인간·자연 공생위한 교육 확장 주문
6월12일 ‘세계식물원교육의 날’ 지정
국립수목원·美 아널드수목원 협약
일제때 美 반출 식물 130여종 귀향
“식물원과 수목원은 자연생태계에 있는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마지막 보루 역할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최후의 교육장소일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제11차 세계식물원교육총회(ICEBG) 기조강연자로 나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에코과학부)는 “기후위기 시대, 식물원과 수목원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세계 식물원·정원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식물원교육총회는 국제식물원보전연맹(BGCI)이 주관하며 식물원 교육분야 국제회의 중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회의이다. 서울 총회는 1991년 네덜란드 첫 총회 이후 34년 만에 최초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열린 회의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10차 총회 이후 7년 만이다. 전 세계 51개국, 244개 기관에서 1600여명이 참석했다. 역대 최다 규모이다.
◆“인간-자연의 공생 이끄는 교육의 장”
최 교수는 ‘생태적 전환과 식물원의 역할’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에서 “생물다양성 연구자들이 기후변화 분야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손실은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며 “기후변화는 생물다양성 감소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생물다양성협약(CBD) 의장을 맡았다. 최 교수는 “자연이 건강할수록 우리는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고 정신적으로 더 행복해진다”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건강한 생태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총회에서 ‘행동백신’과 ‘에코백신’을 제안했다. 행동백신은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일상 행동을, 에코백신은 자연 보호 활동 참여로 인류가 팬데믹을 예방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최 교수는 “전 세계적 자연보호 실천, 즉 에코백신 접종이 이뤄진다면 미래의 팬데믹은 예방할 수 있다”며 “에코백신 접종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거점 공간인 식물원·수목원이 맡아 대중에게 생태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행동을 유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후위기는 호모사피엔스에게 식물과 공존하고 공생하라는 숙제를 던졌다. 서울총회에서는 인간과 식물이 학문적 탐구를 넘어 공존하고 공생하는 동반자적 의미로 재정비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시대적 과제 앞에서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는 공존의 가치를 알리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인 식물원과 수목원이다.
수목원과 식물원은 단순히 나무와 생물을 보전하는 공간이 아닌,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평화로운 공생을 이끌어내는 공간이다. 자연보호와 연구·교육이 이뤄지고 자연생태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또 다른 ‘생명이 있는 별’이다.
샤바즈 칸 유네스코 동아시아사무소장은 ‘변화의 씨앗을 심다; 식물원과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라는 주제의 두 번째 기조강연에서 “전례 없는 기후위기 시대, 생태적 전환기적 상황에서 식물원과 수목원은 핵심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교육과 치유, 생물다양성 보전의 핵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칸 소장은 생태계 모니터링, 보전, 대중참여를 유도해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 식물원이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식물원·수목원은 지구의 내일을 설계하는 교실”이라며 “생물다양성 보호는 물론 모든 세대를 위한 야외학습장으로 자연과 지속가능성을 체험하며 학습할 수 있는 자연 기반 교육공간”이라고 했다. 칸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식물원 교육 확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사회학자들은 인류의 대전환이 두 차례 있었다고 한다”며 “‘언어적 전환’과 ‘문화적 전환’인데, 현재는 ‘생태적 전환’이 가장 시급한 전환이다. 인간과 식물의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정립할지, 식물원과 수목원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역설했다.

◆미국에 반출된 ‘식물유학생’ 130여종 귀향
국립수목원은 9일 서울총회장에서 미국 하버드대 아널드수목원과 일제강점기 식물자료 복원과 종자 재도입, 공동출판을 위한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아널드수목원은 1872년 설립돼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수목원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한국서 넘어간 130여종의 ‘식물유학생’이 있다. 울릉도 특산종 너도밤나무와 솔송나무, 섬잣나무 및 멸종 위기에 처한 구상나무, 미선나무, 가문비나무 등 희귀 19종, 특산 15종 등 172분류군이 있다. 이번 LOI로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의 색을 물들인 식물들의 귀향길이 마련된 것이다.
두 수목원은 광복 80주년에 맞춰 9월쯤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식물 문화유산의 현황과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는 공동출판물을 발간할 예정이다. 임영석 국립수목원장은 “이번 협약은 식물 재도입이라는 교류로 과거와 현재를 잇고 전 지구적 과제에 협력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했다. 네드 프리드먼 아널드수목원장은 “한국의 광복 80주년을 맞아 뜻깊은 식물 교류와 기록작업을 하게 됐다. 앞으로 두 나라가 식물학계의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총회 참가자들은 폐막일인 13일 지속가능한 변화를 촉진하고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공동선언문을 선포한다. 선언문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성찰 및 생물다양성의 가치 인식 제고를 위한 식물원의 역할을 증대하고 식물원·수목원들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6개 핵심 분야 도출이 담길 전망이다.
6개 핵심 의제는 △기후위기 시대의 자연기반 치유와 기후행동 △원예치유 및 교육 프로그램 강화 △보전 지식과 자원 확산·교육역량 확대 △지역 기후행동과 기후 목표 달성 지원 교육프로그램 개발·운영 △식물원의 현지 외 보전 및 종 복원 활동 지원 △거버넌스 기반 보전 및 교육적 자주성 촉진이다.
참가자들은 공동선언문을 바탕으로 앞으로 지역 기후행동과 기후 목표 달성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보전기술, 자원 지식의 통합 등 학제 간 교육파트너십을 구축할 방침이다.
서울총회는 또 매년 6월12일을 ‘세계식물원교육의 날’로 지정키로 합의했다. 세계식물원교육의날은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에 있어 전 세계 식물원의 교육적 역할을 널리 알리고 전 지구적 연대와 공동의 의지를 보여주자는 취지다. 앞서 세계식물원교육총회는 세계식물원교육의날 지정을 위해 세계기록유산(IAC) 국제자문위원회에 승인을 받았다. 임영석 원장은 “식물원 교육이 환경 인식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대해 전 세계적 인식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 임영석 국립수목원장 “韓 생물다양성 보전 세계가 인정… 일상적 식물원 교육 앞장설 것”
“우리나라 식물원 교육 분야는 세계적으로 우수하지만 그동안 기회가 적어 늘 아쉬웠습니다.”
임영석(사진) 국립수목원장은 12일 “우리나라 식물원 교육 분야는 국제적으로는 후발주자로 인식되지만 이는 교육 수준이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알릴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 원장은 “국립수목원을 비롯해 국·공·사립수목원들이 협력해 제11차 세계식물원교육총회(ICEBG)를 연 것은 한국의 식물원 교육을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조명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총회는 국립수목원이 그간 국제 네트워크에서 지역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펼친 활동 등이 인정받은 결과다. 그는 “11차 서울총회는 동아시아 국가 중에선 처음 개최한 것”이라며 “대한민국과 국립수목원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식물원을 통한 지속가능발전 실현 전략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수목원은 앞으로 식물원 교육을 일상적 실천 방향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임 원장은 “그동안 식물원과 수목원의 교육은 식물 지식의 전달과 과학적 기반의 보전 필요성에 초점을 맞췄다”며 “그러다 보니 실습과 자료 중심으로 이뤄져 왔는데, 이번 총회를 통해 그런 교육이 일상 속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코자 한다”고 했다.
임 원장은 식물과 과학이라는 기존의 틀을 넘어 미술과 음악·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을 시도해 식물원 교육의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 청소년 참여, 기술 융합 등 5대 소주제 아래 경기도교육청과 협력한 공교육과 식물원의 연계모델, 청소년 주도 시민과학 프로젝트, 예술과 과학의 융합교육 등을 실제 운영했다”며 “식물원 교육의 혁신적 방향을 보여준 것으로 앞으로도 이 같은 실천적 과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임 원장이 꼽는 서울총회 성과는 상당하다. 유네스코 동아시아사무소와 공동교육자료 개발 및 정책 협력, 미국 아널드수목원과의 일제강점기 식물자료 복원과 종자 재도입 협력, 중앙아시아 식물다양성 보전네트워크(CABCN)와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공동조사 및 종자은행 구축 업무협약 체결이 대표적이다.
임 원장은 “세계식물원교육총회는 기후위기 대응, 청소년 교육, 지역사회 연계, 국제협력이라는 네 축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 플랫폼”이라며 “생물 다양성과 인간 삶의 가치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식물원이야말로 교육과 치유, 지속가능한 삶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