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브라이언 윌슨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외신에 따르면 윌슨의 가족은 이날 공식 웹사이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윌슨이 치매를 앓고 있었으며, 지난해 아내 멀린다가 사망한 이후 건강상태가 더 나빠졌다고 전했다.

윌슨은 1961년 남동생 칼과 데니스, 사촌인 마이크 러브와 친구 알 자르딘 등과 밴드를 만들었다.
‘서핀 유에스에이’(Surfin’ USA), ‘서퍼 걸’(Surfer Girl), ‘코코모’(Kokomo) 등 노래를 연이어 히트시켰다. 1960년대 영국의 비틀스의 ‘라이벌’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비치보이스는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총 30개 넘는 곡을 빌보드 차트 40위 안에 진입시켰고, 전 세계적으로 1억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윌슨은 히트곡의 대부분을 작곡했다. 서핑과 자동차 등으로 상징되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젊은이들의 문화를 잘 녹여내 ‘서프 뮤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AP통신은 “윌슨은 록 음악계의 위대한 낭만주의자 중 한 명으로 전성기에는 청량감 넘치는 완벽한 음악, 즉 단 하나의 진정한 사운드를 향한 가파른 여정에 오른 고뇌에 찬 인물이었다”고 소개했다.
밴드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윌슨은 정신질환과 약물·알코올 중독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윌슨은 밴드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66년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며 밴드 투어 공연 도중 이탈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밴드의 핵심 멤버로 남아 스튜디오 곡 작업에 집중했다.
솔로로도 활동했다. 1988년 솔로 앨범 ‘브라이언 윌슨’을 발표했다. 2004년에는 솔로로 발매한 ‘브라이언 윌슨 프레전트 스마일’로 생애 첫 그래미상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발매한 앨범은 2015년에 발표한 ‘노 피어 프레셔(No Pier Pressure)다.
윌슨은 가수 마릴린 로벨과 결혼했으나 이혼했고, 1995년 멀린다 레드베터와 재혼했다.

윌슨의 별세 소식에 비치보이스 창립 멤버 앨 자딘은 “친구이자 반 친구, 풋볼팀 동료, 비치보이스 밴드 동료이자 제 영혼의 형제여, 당신이 우리 삶 속에 오랫동안 함께해 준 것에 항상 감사할 것”이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밥 딜런은 X(옛 트위터)에 “오늘 브라이언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듣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브라이언, 편히 쉬세요”라며 애도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